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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당시20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9년 3월 26일 전북 고창 출생 1983년 영선중학교 졸업 1984년 인천 직업훈련원 수료 대우조선 입사, 공무기계부 근무 1989년 5월 29일 구사대 가입을 강요하자‘노동자와 노동자간의 싸움을 유발시키지 말라’며 항의, 분신∙투신 1989년 6월 4일 운명 |30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84년 5월 1일 대우조선에 입사하여 일하면서, 노동조합 소위원으로 활동하였 습니다. 당시 대우조선은 민주노조가 들어서서 ’89년 5월 18일부터 노조는 기본 급 인상과 주 44시간 근무제 실시 및 해고자 3명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임금인 상과 단체교섭을 시작하였으나 사측은 동결을 주장하여 결렬되었다. 또한, 사측 은 단체협상 과정에서 구사대 성격을 띠는 상록회를 조직 노동자들에게 가입을 권유하고‘파업을 할 경우 병역특례자 2백여명을 군에 입대시키겠다’는 등의 노 조 탄압을 자행하였다. 또한, 정당한 교섭에 대해 사내∙외 회보, 유선TV방송을 통해 주민과 대우조선 직원들을 회유하기도 하였다. 당시 노태우정권은 노동운동에 대하여 급진불순세력이라 규정하고 ’88년 후반 기부터 노동계를 통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다. 또한,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설 치‘불법노사분규에 대한 집중수사 방침’을 시달 하는 등 노동문제를 공안문제로 몰고갔다. 이러한 정권과 자본의 노동탄압이 자행되던 ’89년 5월 29일 오전 8시 30분 기 계조립부 사무실에서 아침 조회중 반장은 구사대였던 상록회 헌장과 입회원서를 나누어주면서 가입을 권유하였다. 노조 소위원으로 활동하던 동지는 이를 받아 찢 어 버리고 노∙노 싸움을 유발하는 하지 말라, 반장도 조합원이다 왜 이러냐고 따 진 후 오전 9시 노조 사무실에서‘회사는 더 이상 노동자를 분열시키지 말라. 노동 조합만세’구호를외치며정권과사측의이러한태도에항거하여분신하였다. 동지는 부산 백병원으로 옮겨져 입원 치료중 같은 해 6월 4일 새벽 1시경 운명 하였다. 이러한 동지의 항거에 대해 사측은‘이 어려운 시기에 일부 선동분자들은 단체 협약과 사규를 무시하고 종업원을 불법 소집하여 우리의 생산시간을 낭비하여 감정에 호소하는 몰지각한 행동을 자행하였다. 이러한 행동에 동조하는 것은 회 사문을 빨리 닫게 하는 불행한 결과를 자초하게 된다.’라는 담화문을 발표하는 등 반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하였다.’ 끝내살리라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