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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모(당시20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9년 10월 21일 전남 보성 출생 1985년 광주 동신중 졸업 1986년 광주 직업훈련원 수료 대우조선 입사 1989년 5월 29일 대우조선 제3기숙사 7동 옥상에서 분신, 투신하여 운명 |302|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노태우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광주직업훈련원을 마치고 ’89년 대우조선 조립2부 선수미과에서 일하 였다. 당시 대우조선은 민주노조가 들어서서 ’89년 5월 18일부터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주 44시간 근무제 실시 및 해고자 3명의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임금인상 과 단체교섭을 시작하였으나 사측은 동결을 주장하여 결렬되었다. 또한, 사측은 단체협상 과정에서 구사대 성격을 띠는‘상록회’를 조직 노동자들에게 가입을 권 유하고‘파업을 할 경우 병역특례자 2백여명을 군에 입대시키겠다’는 등의 노조 탄압을 자행하였다. 당시 노태우정권은 노동운동에 대하여 급진불순세력이라 규정하고 ’88년 후반 기부터 노동계를 통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다. 또한, ‘공안합동수사본부’를 설 치‘불법노사분규에 대한 집중수사 방침’을 시달하는 등 노동문제를 공안문제로 몰고갔다. 이러한 정권과 자본의 노동탄압속에 노조 소위원으로 활동하던 박진석 동지가 정권과 사측의 이러한 태도에 항거하여 분신하였다. 이를 두고 사측은 생산시간 낭비와 회사를 빨리 문닫게 하는 몰지각한 행동이 라고 규정하는 회사측의에 행위에 분노하여 5월 29일 저녁 10시 40분경‘노동자 를 노예화하는 경영자의 노조탄압을 규탄하고 동료들의 원직복직과 임금인상 쟁 취를 이루어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기숙사 옥상에서 분신 후 투신하여 옥포 대우병원으로 옮기던 중 운명하였다. “ …경영자란 놈이 생각하는 것이 노동자 탄압과 자신의 명분을 위하여 살아간다면 노동자 는이땅의노예밖에더되겠습니까? 부모님불초소생을용서하여주십시오. 이못난불초소생 은먼저이세상을하지하오니부디제생각마시고독한마음잡수시고저의못다한세상살이 가되어주시기바랍니다.…” - 부모님께드리는유서중에서- 끝내살리라 |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