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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관 (당시21세)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 1966년 12월 강원도 삼척군 출생 1973년 3월 철암국민학교 입학 1978년 2월 대구 남산국민학교 졸업 1981년 2월 대구 경구중학교 졸업 1983년 2월 포항 성광고 졸업 1986년 5월 27일 군입대 1987년 12월 4일 의문의 죽음 |26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사회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계명대 앞에서 선물의 집을 운영하며, 성실 하게 생활하던 중 계명대에서 상영한 5∙18민주화운동 관련 비디오와 전시회를 보고 큰 충격과 분노를 느끼며, 이후 변혁운동에 대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86년 군에 입대 후 당시 집권 여당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군대내에서 소 신껏 후보를 찍겠다는 적극적인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였다. 대통령 선거 군 부재 자투표가 치러진 ’87년 12월 4일 평소 정치적 소신을 가지고 정부를 비판하며 지 속적으로 표현했던 동지는 부재자투표에서 야당 기표자가 발생하였다는 등의 이 유로 내무반에서 질책과 집단 구타를 당하여 운명하였다. 동지의 사망으로 인해 부재자투표의 위법성에 대한 문제제기 여론이 거세었 다. 당시 동지가 근무하던 부대등 대부분의 군대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매 주 정신교육을 갖고 부재자투표에 대한 일반적 사항과 여당후보의 당선 필요성 을 강조하며, 개인 면담을 통해 중대원들에게 여당 후보를 지지하도록 유도하였 다. 또한 투표 당일 날에는 기표용지를 기호1번 여당이 위로 올라오도록 접어주 어 찍도록 유도하거나 책상위에 펼쳐놓아 비밀선거 원칙을 반하여 진행하였다. 동지의 죽음에 대해 헌병대와 보안사령부는 구타피의자와 내무반장등을 조사 하여 부재자투표와 관련성을 파악하였으나 이를 은폐하였고, 유가족들을 설득한 다며 회유와 감시등의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하였다. ’89년 열린 양대부정선거특위 청문회에서도 군당국은 증인들에게 헌병대 수사 기록대로만 증언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여 진실을 밝히지 못하다가, 가족들의 끈 질긴 진상규명 노력을 통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활동과정에서 관련자 들이 양심 고백을 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게 되었다. 끝내살리라 |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