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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당시23세) 1964년 10월 7일 양평군 출생 1982년 2월 성일고등학교 졸업 1984년 3월 외대 용인캠퍼스 영어과 입학 1986년 9월 외대 용인캠퍼스 학회연합회장 1987년 6월 용성지역 호헌철폐 및 군부독재 타도 학생협회회 공동의장 1987년 6월 25일 경찰의 침탈을 피하다 교통사고로 새벽 2시경에 운명 |22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학생 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서울대 박종철 열사의 고문조작은폐사건으로 전 국민이 분노하고 지긋 지긋한 군사독재를 끝장내고자 성난 파도같이 일어섰던 ’87년 6월 항쟁 당시 용 인성남지역총학생회연합(용성총련) 호헌철폐 및 군부독재 타도 학생협의회 공동 의장을 맡아 투쟁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동지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기 위해 수배조치를 내렸고 동지는 그 지치기 쉬운 수배생활 속에서도 늘 승리를 확신하였고 오히려 한달 생 활비를 형편이 어려운 동료, 후배들에게 선뜻 내놓으며 자신은 끼니 거르기를 예 사로 했던 투사였다. 그러던 중 경원대에서 경찰의 학내 침탈 소식을 듣고 급히 몸을 피하다가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였다. 동지의 죽음은 5.18광주민중들의 피를 밟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정권이 정권 연장을 위해 학생을 비롯한 민주세력들을 탄압하고 억압한 필연적인 결과였다. ‘암울한식민지조국, 밤의어둠이걷히지않고민족해방의찬연한신새벽이동트기전에는 그대를보내지도, 보낼수도없다는것을…투사이재용동지를생각하며용기를얻습니다. 그 리고확신합니다. 우리들의살을태워, 우리들의뼈를깎아, 기필코이피의전투에서민족해방 의 위업을 이루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국이 해방되고 민중이 주인 되는 새 날, 동지와 함께성남에서, 어머니조국강토에서한판춤을출것입니다.’ - 추도식추도사중에서- 끝내살리라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