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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농업학교 재학중인 1929년 6월에 동교생 조길룡(曺吉龍)·김남철(金南哲) 등 20여명과 함께 무등산에 모여 조국독립과 사회과학 연구를 목적한 항일학생결사 광주농업학교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동회는 당시 광주지역의 중심적 항일결사였던 성진회(醒進會)가 1927년 3월에 형식상 해체된 후, 이를 확대 개편하여 결성한「독서회중앙본부」의 하부조직이었다. 동회의 운영은 전회원을 4개조로 나누어 조별로 연구활동을 하는 한편 별도로 학년별 조직도 구성하였다. 그는 동회를 통하여 항일정신을 고양하던 중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이후 동조직이 발각됨으로써 1930년 1월에 붙잡혔다. 이로써 그는 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 받았으며,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출옥후 일본에 건너간 그는 1934년 11월 대판(大阪)을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하여 관서지방협의회(關西地方協議會) 재건준비위원회(再建準備委員會)를 구성하고 항일투쟁을 전개하다가 1935년 12월에 다시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1936년 7월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