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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무장봉기가 일어난 이후 무장대와 경찰로부터 각각 주민들이 죽임을 당하는 인명 희생 사건이 몇 차례 있었습니다. 4월 29일에는 오라리 마을 대동청년단 부단장과 단원들이 납치된 후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4월 30일에는 동서간인 대청단원의 부인 2명이 납치됐는데, 두 여인 중 한 명은 맞아 죽고, 한 명은 가까스로 탈출해 이 사실을 경찰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5월 1일, 오라리에서는 방화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오전 9시경 전날 무장대에계 살해된 여인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마을 부근에서 열렸던 장례식에는 3~4명의 경찰과 서청/대청 단원 30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매장이 끝나자 트럭은 경찰관을 태우고 떠났고, 청년단원들은 그대로 남아 집들을 찾아다니며 12채의 민가에 불을 질렀습니다. 우익청년단원들이 민가에 불을 지르고 마을을 벗어난 오후 1시경, 무장대 20명 가량이 총과 죽창을 들고 청년들을 추격했습니다. 급히 피했던터라 청년단의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시각을 전후해 마을 어귀에서 이 마을 출신 경찰관의 어머니가 피살되었습니다. 4.3 봉기가 일어난 이후 진행중이던 평화협상은 이 방화사건으로 결렬이 되엇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이 강경진압작전을 전개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는데요. 만약에 오라동 방화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평화협상의 내용대로 그대로 진행이 되었다면 7년 7개월의 고통의 세월은 오지 읺았을 수도 잇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져 옵니다. 오라리 방화사건은 '제주도 메이데이'라는 미국의 기록영화로 그 때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데요. 미군 촬영반에 의해서 입체적으로 촬영이 된 이 영화에서는 미군 비행기를 타고서 마을 공중에서 촬영을 하기도 햇습니다. 그리고 오라리로 진입하는 경찰기동대의 모습이 함께 촬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