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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의귀마을 4·3길 가시마을 4·3길 북촌마을 4·3길 오라동 4·3길 금악마을 4·3길 동광마을 4·3길 북오름  삼밧구석마을 터  원물오름 북오름 원물 평화로 이왕원(국영여관)터  안덕충혼묘지 옛 공고판터   잠복학살터  무등이왓마을 소개  임문숙일가 헛묘 최초학살터  동광육거리 동광환승정류장 (모슬포 방면) IUCN기념숲 광신사숙터  광신사숙터   큰넓궤  도엣궤 동광마을입구 서광리 동광리 김여수일가 헛묘 북오름 큰넓궤 입구 임씨올레   4·3희생자위령비 동광분교  방에   방에터  삼밧구석 잃어버린마을 표석 동광리사무소(4·3길센터)  현의합장묘 쉼터(의귀천)  헌마공신 김만일묘  의귀리사무소(4·3길센터) 동백나무길 한남리 삼나무숲길 수망사거리 김만일묘 입구 (푸른농원) 신흥리 주재소(간이학교) 의귀교회 서중면터 소낭길 편백(삼나무)길 구실잣밤나무길 민오름주둔소 가는 길 현의합장묘입구(녹주맥반석 입구) 동골왓 신산모루  송령이골  제주 4·3 남원 희생자 위령비  현의합장묘 옛터  장판거리 의귀초등학교 4·3사건 당시 의귀초등학교 동녘밭  ↑ ↑ 의귀환승정류장 (의귀초등학교) 의귀환승정류장 (의귀초등학교) 현의합장묘 가는 길 옷귀馬테마타운 입구 비자나무 숲길 편백나무 숲길  전망대  민오름주둔소 영궤   물나는이멩이 옷귀馬테마타운   반드기왓 화전마을  민오름 제주 안덕 동광마을 4·3길 제주 남원 의귀마을 4·3길 제주특별자치도 4·3지원과 064) 710-8454 안덕 동광리 사무소 064) 794-8722 남원 의귀리 사무소 064) 764-0185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 064) 783-4303 한림 금악리 사무소 064) 796-6368 표선 가시리 사무소 064) 787-1305 제주시 오라동주민센터 064) 728-1541 임문속 일가 헛묘 1948년 11월 중순 이후 큰넓궤에 숨어있던 동광리 주민들이 토벌대에게 발각되자 뿔뿔이 흩어졌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주민들은 제대로 숨지 못했고 대다수가 붙잡혀 재판도 없이 정방폭포 위에서 학살당했다. 유족들은 시신이 겹겹이 쌓여 썩어 있거나 바다에 떠 내려가 찾을 수가 없어서 희생자 9명을 헛묘 7기로 혼백만 모셔 원혼을 위로했다. 2명은 합묘다. 무등이왓마을 최초 학살 터 1948년 11월 15일 동광리에 들이닥친 토벌 대는 소개령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주민 들을 무등이왓에 집결시켰다. 토벌대는 주민 10여 명을 호명하여 팔,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구타했는데 덜 맞아 육신이 온전했던 사람은 도망을 쳤고 나머지는 모두 이곳에서 총살 당했다. 도엣궤 큰넓궤와 더불어 4·3 당시 동광리 주민들이 집단으로 피난 생활을 했던 곳이다. 굴 내부는 30여 미터로 원래 큰넓궤와 이어져 있었다. 동굴 바닥에는 주민들이 가지고 갔던 생활용구 파편들이 널려있어 그때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 ‘지슬’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삼밧구석마을 터 과거 주민들이 옷감, 밧줄 등을 만들기 위해 삼을 재배했다 하여 마전동으로 불리웠다. 4·3 당시 임씨 집성촌으로 46가구가 살았는데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으로 주민들은 살육을 피해 자연 은신처를 찾아 큰넓궤 등에 흩어져 살았다. 마을 주민들은 토벌대에 죽임을 당하거나 붙잡혀 이듬해 1월에 정방폭포 인근에서 모두 총살당했다. 현재는 집터와 올레, 우영팟이 남아 그 흔적을 엿볼 수가 있다. 잠복학살 터 1948년 12월 12일 토벌대는 전술훈련을 하듯 잠복해 있었다. 토벌대는 김두백 등 일가족 10여 명을 한곳으로 몰이하여 짚더미나 멍석 등을 쌓아 그대로 불을 지르는 만행을 자행했다. 울부짖는 고통 속에 화염에 휩싸여 죽어간 이들은 대다수 여성, 노인, 아이였다. 송령이골 이곳은 4·3 당시 의귀초등학교 전투에서 사망한 무장대의 시신이 묻힌 곳이다. 1949년 1월 12일 새벽, 무장대는 의귀초등학교 주둔 부대를 공격했으나 2시간의 전투에서 51명의 사망자를 내고 퇴각했다. 이 때 사망한 무장대 시신은 초등학교 뒤편에 흙만 대충 덮인 채로 방치되었다가 그 해 봄 토벌대의 지시에 의해 이 곳으로 옮겨져 매장되었다. 민오름주둔소(영궈모루주둔소) 민오름주둔소는 1952년 100전투경찰사령부 1개 소대가 주둔하여 남아 있는 무장대를 진압하기 위해 작전을 펼쳤던 곳이다. 의귀초등학교 4·3사건 당시 의귀초등학교는 의귀리, 수망리, 한남리, 신흥리 4개 마을의 어린이들이 함께 다녔던 학구공동체였다. 4·3사건이 한창이던 12월 26일부터 육군 제2연대 1대대 2중대가 학교에 주둔하였다. 1949년 1월 12일 새벽, 무장대가 의귀초등학교를 습격하여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때 군인 4명과 무장대 51명이 사망하였다. 이 습격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군인들은 의귀초등학교에 수용 중 이던 80여 명의 주민들을 학교 동녘 밭에서 학살해 버렸다. 이 때 희생자들은 현재 ‘현의합장묘’에 안장되어 있다. 현의합장묘 이곳은 4·3사건 당시 의귀초등학교에 주둔했던 군인들에 의해 주민 80여 명이 집단학살당한 주민들의 시신이 안장된 곳이다. 1983년 ‘의로운 넋들이 함께 묻혔다’는 의미를 담아 ‘현의합장묘’ 묘비를 세웠으며, 해마다 음력 8월 24일에 이곳에서 ‘위령제’를 봉행 하고 있다. 영궤 4·3사건 당시 토벌대의 강경진압작전을 피해 의귀마을 주민들이 은신했던 곳이다. 궤 입구가 넓어 토벌대에 발각되기 쉬웠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는 당시 주민의 증언이 있다. 영궤는 오랫동안 피신처로 이용되지 못했지만 임시로 비를 피하고 추위를 막기에는 층분 하였다. 제주4·3길은 4·3당시 사람들의 두려움의 기억과 생존을 위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길입니다. 화해와 상생으로 4·3을 해결해 온 제주인의 노력을 알리고자, 제주4·3길에서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 아름다운 제주도와 4·3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제주 사람들의 온갖 시련과 애환을 지켜낸 정주목과 같은 퐁낭(팽나무), 4·3의 아픔을 당당히 극복 하는 아름다운 제주 · 평화로운 제주,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제주공동체 복원의 의미로 ‘팽나무’로 정했습니다. 4·3길 상징 로고 4·3길 상징 띠 문의 붉은색은 정열, 희생, 진실을 뜻하며, 흰색은 순결, 결백, 평화 등을 뜻합니다. 제주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제주자연과 환경에 잘 적응하며 평화를 사랑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임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함께 걷는 4·3길 큰넓궤 가는길 거리 4km 시간 1시간 30분 현의합장묘 가는길 거리 7km 시간 2시간 무등이왓 가는길 거리 6km 시간 2시간 30분 민오름주둔소 가는길 거리 7km 시간 2시간 동광환승정류장(모슬포 방면) ▶ 152, 251, 252, 253, 254, 752-1교통정보 의귀환승정류장(의귀초등학교) ▶131, 132, 231, 232, 295, 743-1, 743-2교통정보 제주 한승이밭 북촌리 북촌해동리 애기무덤 위령비 북촌초등학교 본향당 북촌리사무소 사조리조트 북촌항 등명대 해동포구 해동마을  서우봉 일제진지동굴과 몬주기알  서우봉 일제진지동굴과 몬주기알  꿩동산 다려도 북촌환해장성  가릿당(구짓머루당) 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 (4·3길 센터) 고두기엉덕(선사유적지) 낸시빌레   포제단  마당궤  마당궤  당팟 정지퐁낭 기념비  정지퐁낭 기념비   북촌포구  북촌포구 제주 조천 북촌마을 4·3길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 1949년 1월 17일, 북촌초등학교 서쪽 고갯길 에서 무장대의 기습으로 군인 2명이 피살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북촌마을에 들어온 토벌 대가 마을 주민 300여 명을 대학살한 장소로, 2009년 위령제단과 북촌4·3기념관 및 위령 탑이 설치되었으며, 북촌리 사건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의 문학비도 여기에 세워져 있다. 북촌포구 1948년 6월 16일 우도에서 출발하여 제주읍 으로 향하던 한 척의 배가 갑자기 몰아친 풍랑 때문에 북촌포구로 뱃머리를 돌렸는데 이 배에는 우도지서장과 순경을 포함한 가족 13명이 동승하고 있었다. 당시 지서장은 북촌 포구에 들어서면서 고기 떼를 향해 총을 쏘았는데 이 총소리를 듣고 접근한 무장대에 의해 경찰 2명이 희생되었다. 당팟 1949년 1월 17일 북촌학살 때 북촌국민학교 운동장에 모인 북촌주민들은 군인들에 의해 이곳으로 끌려왔다. 군인들은 주민들을 이곳 으로 끌고 오자마자 곧바로 총살했다. 당시 북촌학살은 북촌국민학교를 중심으로 동쪽의 ‘당팟’과 서쪽의 ‘너븐숭이’로 나누어 이루어 졌고, 이곳 ‘당팟’에서는 100여 명이 희생되었다. 정지퐁낭 기념비 이 곳은 정지퐁낭과 연못이 있어 조선시대 때 관리들이 쉬었다가는 장소였다. 정지퐁낭은 수령 약 800년 된 팽나무로 마을의 정자 역할을 하였으나 1958년 9월 태풍 ‘사라’호에 의해 한쪽으로 쓰러지자 제거하고 다시 심었다. 이 나무 옆에 있는 제주목사 선정비에는 4·3 사건 당시 총탄자국들이 선명히 남아 있다. 서우봉 일제 진지동굴과 몬주기알 ■ 진지동굴(등록문화재 제309호) 서우봉 해안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20여 개의 진지동굴이 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진지동굴은 입구가 3개인데 내부가 연결된 ‘王’자형으로 마을사람들은 ‘삼형제굴’이라고도 한다. 180m 정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진입 로가 있으며, 진입로에서 30m 정도 들어가면 진지동굴들을 볼 수 있다. ■ 몬주기알 서우봉 정상에서 바닷가로 향한 해안절벽을 말한다. 절벽 아래에는 입구는 작지만 내부가 비교적 넓은 천연동굴이 있어, 4·3 당시 북촌주민들 뿐만 아니라 함덕주민들도 숨었던 장소이다. 썰물일 때 해안가로 접근이 가능하다. 토벌대의 작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인 1948년 12월 26일경 4~5명의 여성들이 절벽 위에서 총살당하는 등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곳이다. 북촌마을 4·3길 가는길 거리 7km 시간 2시간 북촌리 ▶201, 900 북촌해동리 ▶201, 704-4교통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