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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마을 4·3성터 32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월평동 1107-2 위치(위경도) 33.471101, 126.574354 조사일 2020. 9. 18(금) 유적지 개요 월평리는 1948년 11월 소개령이 내리자 주민들이 해안마을로 피신하면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곳임. 다른 마을보다 늦은 1954년이 되어서야 재건이 이뤄짐. 유적지 안내판 설명 [한글] 4·3유적지 월평마을 4·3성 이곳은 제주4·3사건 당시 사방에 흩어져 피신생활을 하던 월평리 주민들이 1945년 10월, 마을 재건을 위해 돌아온 후 산담과 밭담을 등짐으로 날라 성을 쌓은 눈물 아득한 고난의 현장이다. 주민들은 마을 중심부에 둘레 700m, 높이 3m, 폭1m의 성을 쌓아 집단 거주했는 데, 축성 작업에는 화북 주민들까지 동원되었다. 남문과 북문 2곳의 출입문을 만들었으며 성담 주변은 시거리 나무를 쌓아 외부에서 접근이 힘들도록 방어망을 설치하기도 했다.거주공간은 임시로 만든 움막형태의 함바집을 지어 월평리 주민들이 모여들어 함께 거주했다. 월평리는 1948년 11월, 마을이 초토화된 이후 동부 8리 대토벌을 겪으면서 주민들은 인근 곶자왈 지대로 대거 피신했으나 토벌대에 발각되어 현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