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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예순 두해 전 일들을 기억하는 그 햇살이 그때 핏덩이 던 할아비의 주름진 앞이마와 죽은 자의 등에 업혀 목숨건진 수수깡 같은 노파의 잔등위로 무진장 쏟아지네 거북이 등짝 같은 눈을 가진 무리들이 바라보네 성산포 '앞바르 터진목' 바다 물살 파랗게 질려 아직도 파들파들 파들파들 떨고 있는데 숨비기나무 줄기 끝에 철지난 꽃잎 몇 조각 핏빛 태양 속으로 목숨 걸듯 숨어드네 섬의 우수 들불처럼 번지는데 성산포 4·3희생자위령제단 위로 뉘 집 혼백이양 바다갈매기 하얗게 사라지네.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떫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다. 초록과 검정, 섬의 우수,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의 축제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1948년 9월 25일(음력)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위하여 트록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햐안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년 4월 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인구의 10분의 1)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 바위를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씨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잊어버리지 않았다면-그의 시 한편이 그 9월 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유럽최대잡지<GEO>2009년 3월호 게재된 "제주기행문"중에서 J.M G.LE Clezio-200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프랑스) [영문] 없음 *불문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