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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추모글 아버님, 어머님, 할아버님 할머님, 큰누이 작은누이 삼촌 조카 그리고 그 때 함께 가신모든 분들이시여! 그해, 이 터진목 해안 모래밭 앞 절 소리는 이른 봄부터 그렇게 거칠도럭 울더이다. 저 건너 광치기 큰 엉 밑으론 파도소리마저 모질더이다. 어디 그뿐이더까. 뒷 바다 조개 밭으론 전에 없던 멸치 때가 섬으로 밀려와 썩어 문드러지더이다. 그 때, 밤물결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늙은 황소처럼 눈 껌벅이는 소섬머리 등대불과 까칠한 밤하늘 달그림자와 간간이 스쳐 지나가는 갈매기 울음 소리마저 그토록차갑던 이유가 무엇인지 저희는 정말 모르겠더이다. 그해 가을, 이 터진목 앞바르 바닷가 노을은 파랗게 질려 있고 순 하디 순한 숨비기나무 잎새 들마저 초가을 바닷바람 사이에서 덜덜덜 떨고, 거칠게 밀려오던 파도 또한 덩달아 숨죽이던 그때의 가을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가을이더이까. 저희는 들었습니다. 콩 복뜻 볶아대던 구구식 장총소리를, 미친개의 눈빛처럼 시퍼렇게 지나가던 징 박힌 군화 소리를, 그리고 보았습니다. 아닙니다.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당신의 형과 아우와, 당신의 삼촌과 조카와 아들과 딸과 손자와 손녀와 그리고 함께 있던 이웃들이 저 건너 조개 밭에 밀려와 썩어가던 멸치 떼처럼 널 부러진 채 죽어가는 것을, 이유도 모른 채 끌려와 저들이 쏘아대는 총탄을 몸으로 막아내며 늙은 어머니를 구해내던 어느 이웃집 아들의 죽음도, 젖먹이 자식만은 품에 꼭꼭 껴안고 처절히 숨져가던 어느 젊은어미의 한 맺힌 죽음도, 아버지가 아들을, 아들이 아버지를,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피 토하듯 부르다가 눈을 감던 모습도 코 흘리게 어린 우리는 기어이 그 모든 걸 보고 말았습니다. 서럽도록 보았습니다. 그리고 미치도록 울었습니다. 당신이 남긴 빚으로 하여 팔려가던 검은 밭갈쇠의 마지막 눈빛에서 이별의 아픔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어 울고, 열 살 누나가 학교를 그만 둘 때 현실이 얼마나 혹독한가를 알게 되어 울고, 땀범벅 주름 범벅으로 한여름 조밭 가운데서 김을 매느라 해를 쫒던 노역의 소년이 목이메어 더욱 더 울고 헐어터진 고무신과 맨발의 가난이 혹한의 추위마저 잊게 해서 울고 또 울던 우리가 학교 운동회 날 남들은 아버지 손을 잡고 잘도 달리는데 우리는 오로지 하늘에 뜬 한 조각 구름의 손을 잡고 혼자 달릴 수밖에 없는 설움으로 눈물도 말라버려 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그날 그 자리에 간밤 뉘 혼백 다녀갔는지 숨비기나무 잎에 내린 밤이슬이 눈물처럼 고였습니다. 고인 눈물이 아침 햇살에 반짝입니다. 반짝이는 모습이 조금도 낯설지 않습니다. 낯설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도 저리를 함께 했습니다. 꺼이꺼이 울던 갈매기도 하얗고 하얗게 날아오르고 거칠던 물살도 모로 누어 출렁이는 오는, 당신이 가신지 예순두해, 그 동안 변변한 표석하나 새겨놓지 못한 부끄러움이 크던 우리가, 그나마 지난 2006년부터 한 해 한 번 가느다란 향 줄기 지펴올리는 일이 고작이던 우리가, 그때 가신 모든 이들을 위해 이제 비로소 조그만 제단을 여기 마련했습니다. 지금, 그 때 함께 가신 모든 이들의 모습이 이 제단에 향처럼 피어 오릅니다. 힘겹던 새월의 주름살도 향과 함께 이 제단위로 지워집니다. 미움도 원한도 모두 사라집니다. 저 바다 해녀의 숨비질 소리마저 당신의 혼령인양 다가옵니다. 사랑으로 헤엄쳐 옵니다. 용서하는 마음으로 일어섭니다. 상생의 소리로 합장합니다. 찬란한 햇살처럼. 가을 하늘의 구름처럼. 이 제단 앞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부디 영면하옵소서.... 2010년 11월 5일 성산읍4·3희생자위령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강중훈 성산읍4·3희생자유족회장 한광금 위원 정중성 강계현 정순호 홍웅재 오성익 정봉우 운영위원 강대수(고문) 강승진 고승권 김동진 김성옥 김영복 김정길 송대성 신영보 오길수 오문현 오영부 오원희 오종구 정덕삼 정춘웅 한봉서 홍승삼 홍부삼 제자( 題 字) 석산( 昔 山) 강창화( 姜 昌 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