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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추모의 글과 희생자 명단이 있는 제주4·3성산읍희생자의령비와 추모시가 적힌 표지석이 있음. 안내판 설명1 [한글] 제주4·3 성산읍지역 양민 집단학살터 표지석 이곳은 1948년 제주4·3사건 당시 성산읍을 비롯한 인근 구좌읍, 표선면, 심지어 남원읍 양민들까지 무참히 학살당한 곳이다. 당시 이곳에서 학살당한 성산읍 양민들만 400여 명이나 되며 특히 희생된 양민들 중에는 유족이 없이 모래밭에 묻혀버리거나 바닷물에 떠밀려가 버린 시신도 허다했다. 그처럼 뼈아픈 역사의 현장을 그간 아무런 표석도 없이 방치된 채 무수한 왕래의 발길과 거친 파도에 유실됨은 물론 심지어 관계 당국이 무관심속에 도로 확장이라는 미명아래 역사의 현장 일부가 도로로 편입되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이에 우리 유족들은 그 아픈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보호하며 다시는 그런 비극의 역사가 재연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의 장이 되게 함은 물론 오가는 이들로 하여금 분향·묵례의 자리라도 마련코자 건너편 서쪽 언덕에 건립된 추모비와 함께 여기 비극의 현장임을 알리는 조금만 표석을 마련한다. 2012년 11월 5일 성산읍 4·3사건희생자유족회 회원일동 [영문] 없음 안내판 설명2 [한글] 제주4·3유적지(터진목)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터진목’ 일원 성산일출봉이 불쑥 솟아올라 제주 최고의 절경을 사랑하는 이 곳, 터진목은 4·3당 시 성산면 주민들이 끌려와 학살당한 한과 눈물의 땅이다. 성산리는 4·3 당시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특별중대가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죽음과 통곡의 소리가 끊이지 않은 곳으로 변하고 말았다. 서청특별중대의 존재는 성산면 지역주민들에겐 악몽이었다. 그 곳에 한번 잡혀가면 살아오기가 어려웠다. 이들은 성산초등학교 건물에 주둔하면서 숙식을 해결했고, 붙잡아 온 주민들을 수감하고 취조하는 곳은 초등학교 바로 앞 담장 너머에 있었던 감자창고를 이용했다. 4·3의 비극이 강렬히 스쳐갔던 이곳 성산포에는 사람의 목숨을 중히 여긴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의 의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6·25 한국전쟁 당시 상부의 예비검속 명령을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란 이유를 달아 죽음의 명령을 거부하여 많은 주민들의 목숨을 살렸다. 성산일출봉과 마주하는 이곳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4·3사건 당시 무고하게 죽어간 주민들과 제주4·3의 역사를 생각하자. [영문]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