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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 하얗게 흩어져오는 구름들을 보는가 구천세계 건너오듯 한라산 영실 숲 계곡을 따라 여기 정기 서린 볕바른 터에 그대들 영원한 안식의 자리 펴게 하였도다 육신이야 있건 없건 그대들 소중한 함자의 영전에 혈연의 실핏줄인양 향심지 피워 올리면 우리네 가슴으로 여미져 오더이다 무심한 세월 흘려보내고 저 피안의 바다 건너 소용돌이 쳐오는 물결에 밀려 이제 새삼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사유의 푸른 날들과 잊지 못할 추억들 비록 우리네 살림 고단할지언정 형님 아우라 서로 부르며 정겨움 하나로 믿고 의지하던 선량한 이웃들 이제 유월은 오고 봄풀들은 다시 돋는데 어디선가 슬픔의 넋이 된 새들이여 이제 그만 돌아와 울어라 운명의 지침이야 되돌이킬 수 없으되 우리 유족들의 지성 모아 여기 빗돌을 세우고 참 역사 증언의 글귀들을 새겨놓음이니 유월의 하늘 다시 우러르며 그대 원혼들의 제단에 엎드려 명복의 잔을 올리오니 부디 고이 영면하소서 정우 김용길 헌시 <우측면> [한글] 서기 1950년 6월 25일 이땅에 전쟁이 발발 화약 냄새가 가득한 그날부터 삼면(서귀면, 중문면, 남원면)의 님들은 연유도 모른 채 끌려가 예비검속령으로 구금(서귀포 587번지 당시 서귀포 오일시장 내 창고)되었다가 그해 7월 27일(음력 6월 15일)부터 수차례 트럭에 실려나간 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님들의 족적은 알 수가 없습니다. 슬픔에 잠긴 유족들은 오늘까지 백방으로 님들의 족적을 찾으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제 유족들은 정성을 모아 제주도의 지원으로 서귀포시 하원동 762의 1번지 528평의 부지를 매입 원혼의 넋을 조금이라도 위무하고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고자 이곳에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문민정부에서 주창하던 역사 바로세우기를 시작으로 국민의 정부에서는 제주도 4·3특별법 입법으로 4·3사건의 진상규명과 억울하게 희생된 원혼의 명예회복은 물론 4·3 위령 평화공원 조성을 적극 지원하고 있음에 즈음하여 제주도에서도 삼면원혼의 넋을 달래고 우리 유족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서 이 위령사업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님들의 유지를 기리는 마음 한이 없사옵니다. 원혼이시여 이 제단에 고이 안식하옵소서. 명복을 빌며 삼가 이 비를 세웁니다. 서기 2002년 4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