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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계속된 비극 1954년 4·3사건이 종결된 이후 폐허가 된 마을의 복구와 정착사업이 본격화되었으나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희생된 흔적이 남아 있었고, 다시 농토를 개간하고 새로 집을 지어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산간 지대에 살던 주민 절반은 복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전쟁의 피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새로운 주민으로 자리 잡기도 하였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친 난민정착 복구사업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이 복귀하지 않아 폐허가 되어버린 '잃어버린 마을'이 제주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제주4·3 당시 사망·행방불명된 사람들의 무고한 희생은 그 유가족들에게 대물림되었습니다. 군·경 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사법 처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자 유가족들은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사회 활동에 심한 제약을 받았습니다. 제주도민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은 법적 근거도 없는 연과제로 인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렸습니다. 보도연맹원 2만7,000명과 5만여 명의 사건 관련자 가족들이 사찰 당국에 의해 별도로 관리되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유가족들은 '빨갱이의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갖은 불이익을 겪었습니다. 「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 가 4·3 유가족 78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의 86%가 공무원 임용시험, 사관학교 등 각종 입학시험, 국·공기업이나 사기업 취직이나 승진, 군·경찰의 승진 국내외 여행 및 출입국 과정이나 일상생활 감시 등 연좌제 피해를 겪었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고 폭력적 대립 속에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던 이들의 후손들과 가족들도 서로 반목과 갈등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사진설명) 1960년대 복귀 주택 기공식에서 첫 삽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 중산간 마을 재건사업은 6·25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지금·자재 부족으로 지지부진하다가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령 해제 후 실시한 '난민정착사업'을 통해 본격화 되었다. (사진설명)관덕정 옆에 걸린 이덕구의 시체. 1949년 6월 7일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가 사살됐다. 무장대는 이미 와해된 상태였지만 이덕구는 무장대의 상징적 존재였기 때문에 그 영향이 컸다. 경찰은 제주읍 중심지인 관덕정에 이덕구 시체를 나무십자가에 매달아 놓고 어린 학샐들까지 구경하도록 했다. (사진설명)대전형무소 산내 골령골 학살 사전(1950. 7.). 예비검속이 실시된 후 전국 형무소에 수용된 재소자와 국민보도연맹 가입자 등 수천 명이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희생되었다. 이들 중 제주 4·3 관련자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사진설명) 대구 부역자 학살사건(1951. 4.). 왼쪽에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현장을 감독·기록하는 미군의 뒷모습이 보인다. 보도연맹 학살 집행은 국군과 경찰이 했더라도 명령권은 미국사령과에게 있었다. ■어둠에서 빛으로 1960년 4·19 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하면서 4·3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시작되었지만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들어선 군사 정권하에서 4·3사건에 대한 논의는 약 20여 년 동안 중단되었습니다. 1980년 후반 민주화 운동 이후 4·3에 대한 논의는 다시 일어났고 1987년 시민항쟁 이후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4·3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1999년 3월 결성된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는 '제주4·3특별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여 제주 '4·3특별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회부했고 1999년 12월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이 특별법에 의하여 2003년 10월 15일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인 「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 가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10월 31일 제주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은 4·3유족과 제주도민들에게 과거 국가권력의 과오를 공식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이후 2014년 3월 24일에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2018년 제주4·3 70주년을 맞이하여 4월 1일 한국천구죠호의 사회주교위원회에서는 한국교회차원에서 처음으로 제주4·3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하였고, 4월 2일 교종 프란치스코의 제주4·3희생자들을 위한 위로메시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