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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11월 25일 토벌대에 연행된 후 희생되었고, 한봉옥은 12월 1일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토벌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5.상예리 희생자 강시인은 무장대와 관련 있다는 이유로 1948년 11월 17일, 희생자 김경 1949년 1월 5일 도피자라는 이유로 중문리 '신사터'에서 응원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6.상천리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상천리 주민 5명은 일가족이다. 부친 정태옥이 1948년 12월 15일 군인에 의해 연행된 후 총살당한 후, 처 백유생과 딸 3명은 동년 12월 18일 연설이 있으니 모이라고 하여 중문지서에 모였다가 남편 정태옥이 총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항의하자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했다. 7.색달리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한 색달리 주민은 전부 17명이다. 1948년 10월 11일 희생자 변상천은 도피생활을 하다가 순경에게 발각되어 연해된 후 총살당했으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해 행방불명되었다. 동년 11월 11일 희생자 김정수는 무장대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중문지서에 연행된 후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동년 12월 5일 고두회 외 1명은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아 총살당했고, 동년 12월 16일 최기열의 일가족 아들과 딸 등 6명은 남편 송희창이 입산하자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토벌대(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이어 12월 17일 강유생 외 6명은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토벌대(경찰)에 총살당했다. 8.하예리 1948년 12월 10일 무장대 관련자로 오인 받고 부부 2명이 중문리 '신사터'에서 경찰에 의해 총살당했다. 9.하원리 희생자 김규남은 도피생활 하던 중, 1948년 12월 13일 토벌대에 발각되어 중문리 '신사터'에서 총살당했다. 10.회수리 희생자 이용옥은 남편 양우길이 산으로 도피하자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1948년 12월 17일 중문리 '신사터'에서 토벌대에 의해 집단 총살당했다. 중문리 '신사터(현 천주교 중문성당)' 희생자 명단 (희생자 명단 생략) [영문]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