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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외도주재소에 끌려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위 네 분 외에 강경생, 강창선, 김을봉, 고봉익, 양군삼, 양국찰 선생등 10여명이 제주경찰서에 이송 되었고 이어서 목포지청에까지 끌려가면서 선각자의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그 중 강문일, 박영순, 김홍규, 세 분은 목포에서의 1심재판과 대구에서의 2심 재판을 거치면서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이토록 자랑스러운 투쟁의 기억과 기록이 뚜렷하고 분명하건만 해방이후 파란 많은 정국으로 말미암아 이제야 작은 빗돌 하나를 세우기에 이르렀으니 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라 하지 않으랴. 열사들의 후손된 우리들 모두 새삼 옷깃을 여미며 이 자리에 섰으니 피끓는 그 분들의 목소리가 지금인 듯 들려 오지 않는가. 그 날의 교훈이 이토록 생생하니 고향을 사랑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청소년들이라면 이 (작은) 빗돌이 그분들을 기리는 마음의 끝이 아니라 작은 시작임을 다짐해야 만 하리라. [영문] 없음 안내판 설명2 [한글]한라 정기 굳게 맺힌 양지바른 곳에 온 향민 정성 모아 신성한 영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