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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서우봉이나 북촌리 억물 등지에서 총살당한다. 소개령에 따라 함덕 초전 등지로 피난간 주민들도 도피자가족이란 이유로 함덕리 모래밭 등지에서 많은 희생을 치룬다. 1948년 11월 21일 마을이 전소해버리자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내려가거나 동백동산으로 숨어들어갔다. 1949년 봄 주민들은 낙선동에 성을 쌓고 함바집을 지어 집단거주를 시작했다. 1954년 통행제한이 풀리면서 주민들은 마을을 재건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확인한 선흘리 4·3 희생자는 2백 십여명에 이른다. [영문]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