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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태조사 결과 125 아비규환( 阿 鼻 叫 喚) 이었다. 이어서 4·50명씩 당팥으로 옴탕밭으로 몰고가서 사살( 射 殺) 했으니 300여명의 아까운 목숨을 앗아갔다. 전 가옥이 소실( 燒 失) 되고 가족이 흩어져 행방불명이 되니 전체 희생자는 434명이나 되었다. 학교는 개교한지 7년만인 1949년 1월 10일 폐교되었다. 죽다 남은 주민들은 함덕으로 소개( 疏 開) 되어 모진 고생을 하며 5개월만에 복구( 復 舊) 되어 억척스럽게 마을을 이루고 사택( 私 宅) 을 빌려 분교장( 分 敎 場) 을 개설하니 2년 9개월만에 본교가 다시 탄생했다. 배움의 길이 중단되었던 당시 재학생 216명도 폐교 후 53년만에 명예졸업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이제 4·3특별법이 제정되어 진상이 규명되고 역사의 진실이 조명되어 평화시대의 산교육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오늘날 북촌초등학교는 그 날의 참상을 말끔히 씻고 후학( 後 學) 양성의 산실( 産 室) 로 우뚝 서서 70년의 새 역사를 열어 가고 있다. [영문] 없음 연번 점검 사항 상태(O/X) 비고 1 유적지 안내판에 4·3 관련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가? O 2 안내판 관리 상태가 양호한가?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