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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일 시문학 기념관 입구 여기 조국이 낳은 진솔한 시인을 기리는 집을 세워 그의 문학 불멸을 다짐하나니. 이 조가야, 그 체구엔 노동을 하는게 썩 어울리겟는데 시를 쓰다니 허허허 우습다. 조가야. 6척 거구 조선 대지의 사나이 조태일의 풍모는 시인 자신이 일찍이 해학의 대상으로 삼아 노래한 바 잇으나 그 우람한 기상과는 달리 인정머리가 깊숙하기 이를 데 없고 자상한 심금 늘 울려마지 않아 겨레의 아픈 현실과 시대의 희로애락 그리고 자연 모체에의 애틋한 귀의의 가락이 그의 넘치는 술잔인 듯 솟아났으니 그 누가 이 사람을 민족의 시학 앞에 자랑이 아니라 하겟는가. 저 식민지시대 말 해동선풍 꽃피운 동리산 태안사 솔바람 소리 가운데 태어남이 이미 시인의 운명을 태에 감았으며 뒷날 대학 재학 중 세상이 주목하는 시인이 된 것도 그 운명의 현시였더라. '시인'지 창간 주재 및 시집 '아침선박' '식칼론' '국토' 등 많은 시업을 쌓아옴으로써 시단의 대표적 존재이기를 바라마지 않았으니 70년대 이래 군부독재정권에 맞선 문학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일이나 대학 문예창작 교수 및 학장의 업무에 이르기까지 실로 그는 천리마로 내달린 바 있었나니 신이 좋아 산을 오르내렸고 바다가 좋아 섬에 며칠째 갇혀있기도 하였으며 술이 하도 좋아 술 취한 시간에 해가지고 떠올랐더라. 여기 그이름 못잊어 사람 냄새 진한 사람의 문학 영원히 새겨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