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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則倒合必立(분즉도합필립) 여운형선생이 1944년에 쓴 친필 신년휘호이다. '나눠지면 쓰러지고큰 별로 뜬 태양의 꿈 여운형이 공산당과 합당을 반대하며 남로당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정치적 태도도 점차 미.소의 영향을 벗어나는 중간론으로 기울어지자, 미군정 요인들은 점차 여운형에게 신뢰를 보내기 사작하였고 이에 따라 정세가 급변하였다. 한때 여운형을 사기꾼이라고 욕했던 군정장관 아놀드는 '유능한 정치가이자 신념과 지조를 가진 인격자'라고 하며 존경의 뜻을 보였고, 미국 총영사 랭던의 경우 '동양의 위인으로서 간디에 비견될 인물'로까지 극찬하였다. 이렇게 여운형이 좌익편향을 벗어나 자주적 입장을 견지하게 되면서 존재와 영향력이 커지자, 좌익계열은 물론이고 특히 우익 측에서 큰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여운형은 1947년 7월 19일 1시 15분 혜화동 대로변에서 피습을 당하여 서거하였고, 암살의 배후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해 8월 3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민장으로 엄수된 장례식은, 민족의 뜻에 따라, 남북통일이 이루어지는 때에 정식 장례를 치루기 위하여 고인의 관은 철로 제작되었고 방부제를 넣어 30년간 방부할 수 있도록 해 둔것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