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page


54page

건국준비위원회 1945년 8월 15일 아침 엔도오 정무총감과 만난 몽양은 그 자리에서 조선치안권을 이양받았다. 이에 따라 그날 오전 10시경 조선헌병사령부를 방문하여 그곳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독립운동가들을 석방시키고, 이어 서대문형문사를 방문했으나 아직 서류절차가 완료되지않아 수감자를 다음날 석방한다는 약속을 듣고 돌아섰다. 세상은 아직 조용했으나 그날 저녁 여운형은 안재홍등과 함께 계동입구 임용상집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결성했다. 여운형은 이날 건준 위원장에 취임했다. 다음날인 8월 16일 11시 다시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한 여운형은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수감자들을 석방시켰다. 미군 자료에 따르면, 이날 풀려난 사람은 서대문형무소를 비롯 서울 전역에만 1만여 명이 달했다. 이들이 풀려 나오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민중들은 비로소 해당되었음을 확신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천황이 황복방송을 한 8월 15일 당일에는 여운형의 정치적 동지나 그와 관련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직 해방이 되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해 서울의 시가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아직 총칼을 가진 일본경찰과 군부가 엄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