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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의 장소 특정적 신작은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생존자 채의진 작가가 만들던 지팡이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지팡이들은 상처입은 자들의 버팀목이 되고자 하며, 광주 민주화 운동의 방향성과 의미를 연결한다. 채의진은 1949년 12월 24일, 문경 석달 마을에서 벌어진 학살현장에서 총에 맞은 친형과 사촌동생의 시신 밑에 깔리면서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그는 당시 어머니와 누나를 포함 9명의 가족을 잃었으나, 한평생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운동에 앞장서 왔다. 그리고 2016년,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서각을 주로했으며 이 지팡이들은 지붕 위 작업실뿐만 아니라, 집안 곳곳에서 살림살이와 뒤섞인 채 유기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슬픔과 분노, 고독과 저주로 더렵혀진 삶에 맞선 쓰라린 투쟁과 통한의 몸부림'(채의진작가 노트)으로써, 자신이 수집해온 나뭇가지와 뿌리를 통해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과 소통하고자 했다. 한국은 과거사 진상규명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소외와 낙인의 폐해는 오로지 민간ㅇ니 피학살자 당사자들과 유족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채의진 작가의 저항및 발화의 형식은 각별했고 임민욱은 이에 주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