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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기적비'의 이해를 돕는 글 ◎1947년 7월 19일 광주일고의 전산안 광주서중학교가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다. 학교당국 동창회 학부형은 당시 광주의 유지이던 지정선 원창규씨 2인을 추대하여 '광주서중교사 복구기성회를 발족시켰다. 두 유지가 기성회를 중심을 불철주야 헌신한 결과 1951년 학교를 재건할 수 있었다. 동창히와 재학생들은 1953년 5월 1일, 교정에 장학기적비를 세워 두사람의 공적을 기록하였다(광주고보 서중 일고 팔십년사 415쪽) ◎지정선(1905~?)은 광주출신으로 쿄토도시샤(同志社)대학 예과를 졸업했다.1933년과 1937년 전남도으회 의원에 당선되었고, 1935년에는 광주부 부회의원을 지냈다. 여러기업의 간부를 역임했고, 1939년에는 전시체제강화를 위해 조직한 조선유도연합회 참사를 맡았다. 1940년 5월 그의 형 지창선과 함께 국방헌금 4만원, 광주부군사후원연맹 5천원, 광주신사조영비 5천원, 휼병가족 위문금 5천원등 총5만5천원을 헌납했다(친일인명사전3,642쪽) 지정선이 일제의 식민통치기구에 참여하고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역사적 과오를 여기에 함께 적어 후대의 거울로 삼고자 한다. 2019년 11월 광주제일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