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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시〉 기억하라, 온몸으로 결코 질 수 없고 꺾일 수 없어 소나무처럼 거센 비바람 눈보라와 온몸으로 맞서온 서른 해의 세월이여. 기억하라, 검정고무신을 끌고 용봉골과 광천동 들불 야학 사이를 오가던 한 강학(講學), 그러나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던 시대의 조국, 거칠 것 없이 치솟아 오르는 분수처럼 포효하며 속수무책 역사와 한판승을 겨루던 한 청년을.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한 미래와 그저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과거, 그리고 끊임없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현재 속에서 결코 타협하거나 굴복할 수 없어 그 누구에게도 머리 수그린 적 없던 이들이여. 기억하라, 그러나 아직도 만족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랑과 자유, 진리와 평등의 세상 속에서 민주화 성회를 이끌던 단호한 눈빛의 순교자, 어디선가 휘몰아쳐 오고 있을 고아풍에 제 오랜 신념과 자존의 나무뿌리를 잡고 뒤흔들때마다 도청 분수대에서 푸른 날개를 펴는 불사조를. 오, 누구랄 것이 없이 모두가 부끄러웠고 또 당당햇기에 당장의 가난과 절망에도 무릎 꿇을 수 없었던 나날들이여. 기억하라, 예나 지금이나 그 어떤 희생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기회주의자들이 온통 차지한 세상 속에서 그 어디선가 출발을 기다리며 결코 달라지지 않는 동력과 속도, 신념과 양심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이 놀라운 신비의 새벽 기관차, 그 어느 수간에도 제 것을 고집하지 않기에 마침내 제 죽음마저도 기꺼이 민족의 제단에 봉헌한 우리들의 영원한 학생회장을. 기억하라, 지금도 계속되고 반동과 혁명의 세계 속에서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무한의 횃불행진, 아주 뻔뻔해진 서른 해의 시간들이 다시금 서른 번 반복된다고 해도 결코 망각하거나 지울 수 없어 쉼 없이 뒤돌아보면서도 앞으로 날아가는 이 힘센 역사의 천사들, 그러나 제대로 된 명분도, 지켜가야 할 신념도 없는 시대 속에서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기에 우리가 또다시 그대의 이름을 애타게 호명하고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