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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編 순국열사 및 독립운동기 • 63 년 초 석방되었다 이후 그는 1936년 3월 일랍계(一拉漢)에 돌아와 일체의 감시와 통제 속 에서 생활하여야 하였다 53) 라. 광복 후의 민족운동 (1) 만주에서 의 민족이익 수호활동 일본이 패망하던 1945년 8월 15일 신숙은 만주의 이도하자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는 1945년 8월 19일 만주에 소련군이 진주히-여 치안이 혼란해지자 한인들의 안전괴- 권익을 지키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45년 8월 27일 길림성 동영학교(同榮學校)에서 개 최된 길림조선인회(吉林朝빡人會)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부회장으로 이규동 · 이동 산 · 허영백 3인을 선정하고 부서를 조직하였으며, 보안대를 편성하여 치안대와 지-치행정을 행하였다 이 어서 10월 15일 장춘에서 동북한국민회연합회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임된 신숙은 소련 군과 교섭하여 일본군에 억류되 어 있는 교포 10,700여명을 해방시켰다. 1945년 12월 모스 크바 삼상회의의 신탁통치안이 알려지자 그는 1946년 1월 1일 장춘시 내 의 영릭-초등학교 대강당에 모여 신년축히 세 배식을 행하면서 그 소식을 알리고 반탁시위운동을 전개할 것 을 제의하였다. 소련군의 제지로 시 위운동을 전개할 수 없자 그는 신문에 게재하여 반탁의 사를 표명히 였다 1946년 8월 봉천에서 개최된 동북한국교민회총회에서 그는 총회장에 선출되었다. 그는 남경 · 북경의 중국 정부기관과 교섭하여 한인의 귀국방안을 협의하였다. 그는 1946년 11월 초순 천진의 미군출장소를 방문하여 한인의 귀국문제를 요청하였고, 미군소장의 협조로 다 시 통역을 대동하고 북경으로 미군 난민수송책임자를 찾아가서 동북의 한인동포의 상황을 천명하고 특별히 배 한 척을 제공받아 한인들의 귀국을 도왔다. 그리고 그는 북경에서 상 해로 와서 미군정 출장소의 도움을 얻어 그해 말 상해를 떠나 12월 9일 부산항에 도착하 였다.잉) (2) 귀국 후의 민족통합운동 귀국해서도 신숙은 미군정청 외무처를 방문하여 담당자를 만나 만주의 한인동포들의 귀 한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김규식 박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입법의원에 탄원서 들 제출하여 종로 기독교청넌회관에서 강연회를 개최하는 동의 활동을 벌여 만주에 있는 한인동포들의 귀환을 위해 활동하였다. 그는 1947년 4월 김규식의 도움으로 입법의원에 선 임된 뒤 에도 미군정청 등을 찾아다니며 만주 한인의 귀환문제를 호소하여 보았으나 소기 의 결실을 거두지는 못하였다. 그는 1947년 6월 천도교보국당(天道敎保댐黨) 대표로 좌우합작위원회위원으로 선임되어 53) 金正明 r朝蘇獨立運動J 11권(原홉房, 1967), 517면 54) 신숙 r나의 -生J , 124-1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