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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編 순국열사 및 독 립 운동가 • 59 러나 이는 각원 선출 문제를 둘러싼 양측 간의 대 립으로 실패하였다 21) 런데 1919년 5월 1일 갑자기 그는 천도교 중진들과 함께 일제 헌병에 체포되었다. 일제 가 천도교인들의 활동을 방해하려고 성미(誠米)를 독립운동자금이라고 억지를 쓰며 천도교 간부들을 검거하였을 때 그도 관련인사로 검거되었던 것이다.22) 그리고 일제가 천도교인~ 의 활동을 회유하기 위하여 1919년 6월 중순 검거된 긴-부들을 석방할 때 그도 풀려났다 23) 석방 후 그는 최익환 · 전협 등이 주도하는 조선민족대동단에 간여하였다. 그는 1919년 11월 대동단에서 제작한 ‘제2독립선언서’의 서명자 33인 중에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껑) 신숙은 대동단원의 검거로 국내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고 마침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 부에서도 천도교의 대표자로 와달라는 요청이 있자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그는 1920녀 4월 23일 교인 신상태(디]相泰)와 서울을 떠나, 평북에서 최석련 · 이군오 등을 만니-고, 안동 현(꽃싸縣)에 설치된 중간 연락기관 삼산상회(三山램會)에서 근무하는 박승환(朴짜煥) . 한 명하(i:찮明河) . 홍종하(洪鍾河) 등의 도움을 받아 일주일 정도 은거하다가, 상해에서 온 장 경 순(폈敬順)과 함께 이륭양행(治I隆洋行)의 상선으로 3일 만에 상해에 도착하였다 25) 상해에 도착한 신숙26)은 이 미 상해에 머무르고 있던 최동오(崔束따) . 남형우(南亨祐) . 이영 근(李햇根, 李民l틸) . 홍도(洪협, 洪鎭義) . 강지산(姜智f山) . 이우명(李宇|꺼) . 이몽양(李몇 rp) . 오세덕(吳世필) . 김홍선(金弘善) . 장경순(張敬順) 등과 프랑스 조계(租界) 하비로(震飛 路) 보강리(寶康뿔) 20호에 거주하였다. 신숙은 의주교구장 최석련과 선천교구장 이군오에 게 임시포덕비 10,어0 여원을 지원받아 1920년 5월 경 상해 프랑스 조계 보강리 20호에 성 회-회실(많化會렬)을 설립히-였다낌) 신숙은 상해의 최동오 등 천도교인과 함께 성화회실을 통하여 천도교인의 결속을 다져 천도교단의 정치적 힘을 강화하며 선전과 포교의 확대를 통해 상해지역 천도교단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확대하려고 하였다. 또 중앙총부로부터 합 법적이고 자연스럽게 자금을 지원받으려 하였다. 신숙은 1920년 5월 경 최동오의 소개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내무총장인 안창호(安,띔뻔) 를 민-나 비행기구입자금의 제공 독립운동자금의 마련을 위한 주식회사의 설립 등에 관하 여 협의하였다. 그렇지만 이 사업은 국내로부터 자금이 공급되지 않아 실패하였다 28) 21 ) 李炳惠 r三-運動秘史J (時事時報社出版局. 1959). 854면 22) 신숙 r나의 -生J (일신사. 1963). 50면 李賢周 r극내 臨時政府 수립운동과 社會主義勢力의 형성 (1919-1~23) -서 울派 , 上海派를 중심으로-J • 민하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9. 83면, 曺圭泰. [天道敎團과 大韓民國臨時政 府1. r한국민족운동사연구J 23. 1999. 381 면. 23) 신숙 r나의 -生J • 51 면 r每日申報J 1919. 5. 8. 3면 24) r每日申報J 1919. 6. 19. 3면. 25) 신복룡 r大Iii]團賣記J 115-1 16면 , 26) 신숙 , 앞의 척. 52-53면, 이 기록에 의하면 신숙이 신상태와 함께 서울을 떠 난 날짜가 4월 23일로 되어 있다 그러 나 r천도교회월보J 142호. 1922. 7. 72면의 기사에 따르면 신축이 1920년 몸에 상해에 와서 4월 5일에 임시로 천도 교상해성화회실을 마련하고 천일기념식을 치렀다고 되어 있다. 이처럼 날짜에 불합리한 점이 보이는 것은 r천도교 회월보」 의 성화회실 설립일자가 음력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r천도교 중앙층부 직원록J • 布德60년 (1919) . 표영 삼 . [삼온주의 제칭자 강재 신축 선샘1. r신인간J 537호. 1996. 3. 참조. 27) 申蕭. {나의 -生}(日新社. 1963). 55면 -記者. [천도교북경전교실창립축하식 JI J. r천도교회월보J 142호 . 1922. 7. 72면 28) -記者. [天道敎北京傳敎室용IJ立祝賢式記J . r개벽J 142호. 1922. 7. 7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