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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 가명의 얼과 인맥 한편 화남은 유하현에서 국내 각지에 독립단원을 파견하여 배 일사상(排日 J띤想)고취와 군 자금(單資金)모집 활동을 전개하여 큰 성과를 올렸다 또한 임시정부 평안북도 독변부(督辦府)와 제휴하여 김승학 · 백의범 · 백기준 3인을 국내 특파원으로 피-송하여 독립단 지부를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백의범 · 백기준은 용천 의주 등 지 에 잠입 활동하고 김승학은 평안북도와 황해도 일대에 밀행하면서 독립단 지단 88개소를 설치하고 수 백 명의 청년과 거액의 군자금을 모집하여 남만주 독립단 본부에 보내는 일 을 지휘하였다. 김기한에 게도 국내 지단설치의 중책을 주어 김기한은 황해도 평안도 지방을 밀행하떤서 동지를 규합하여 서울에 중앙 총 기관을 설치하고 점차 각도에 조직을 마무리 지어 통일 하고 서울로 돌아와 동지를 찾았다 강시형을 경기도 총관의 사명을 주어 서울에 잠입시켰다. 강시형은 김기한과 만나 일을 모의하고 동지를 규합 지단조직 확대에 힘쓰다. 강시형의 아버 지 강일형 이 어담 대좌의 협 조를 구하다가 어담의 밀고로 발각되어 김기한 · 강시형 · 홍영전 · 정서웅 등 14명이 체포 되고 문서도 압수당해 모든 계획 이 수포로 돌아갔다. 압수된 서류는 다음과 같다. O격고국지신사림(搬告國續바l士林) 약 8백매 0대한독립단 국내분치기관 임 시통칙 0대한독립단 총재 박장호 명의 사령용지 1천매 0사령서(解令똘) 입봉등 약 4백 20매 0사령서 및 통지서 약 3천매 0경고 국내 동포증 위 왜인 관리자(寫 候人 官똥者) 약 1천 1백매 0사형선고장 약 1백매 0대한독립단 재무부 영수증 약 l백 50매 0경고 국내 경향 각당호(各當戶) 약 1백 50매 O밀고 국내 황실종친 및 귀족문무 공경대부사림(公맺[1大父土林) 약 1백매 총재부 간부 내에는 태반이 노유(老짜)들이 라 제반이념과 사상이 신진 청년들과는 표면 화되지 않은 갈등이 잠재하여 있었다 마침 내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이들은 연호(年號)사용 문제를 놓고 노년 측에서는 민국연호(民國年號)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여, 기원독립단(紀元 獨立댐)과 민국독립단(民國獨立團)으로 분열되었다. 회-남은 다시 기원독립단 총재로 추대되었다. 주요 간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박장호(단장) , 백삼규(부단장), 이응해(총단장대변), 김평식(총무부장) , 전덕원(재무부장), 강규묵(검찰부장), 김정희(참모부장), 백진해(참모) , 채원개(독립군대장), 백경수(독립군대 장) , 조맹선, 최향준(무기장)등이다. 회-님-은 조병준을 단장으로 하는 민국독립단과도 조국광복을 위한 일에는 뜻을 같이 하여 상호 협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