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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編 순국열사 및 독립운동가 • 31 티木(일본)守備隊(수비대)와 交戰(교전) 中(중)에 運補(체포)되었으니 아! 痛歲(통재)라 公 (공)은 同年(동년) 十月 (10월) -1一八日 (18일) 內亂罪란 惡名으로 京城(경성)태大「’IJ (서 대문) 폐務fí)í-(형무소)에 收!옮(수감)되어 l校首쩌(교수형)으로 歐|莫(유명)을 달리하셨으니, 救l패(구 국)의 一念(일념)을 가슴에 간직한 채 享年(향년)四十二歲(42세)로 순국하셨다 뚱E身(시신) 은 家族(가족)과 同志(동지)들이 수습하여 加平部(가평군)外西面(외서면)大成뿔(대성리) 南 尾할(남미대) 先瑩(선영)下(하) 子坐原(자좌원)에 안장하였다. 公(공)의 初配(초배)는 安東 (안동)權民(권씨)로 -八九一年(1891년) 十一月 (11월) 二-j-- 日 (21일) 1덴原(동원)1?:坐(해좌) 에 禮歸(여1장)하였고 再配(재배)는 光山(광산)金民(김씨) 永浩(영호)의 따님으로 公(공)을 |친따J(내조)하시다가 짧慣(울분)을 참지 못해 末年(말년)에는 精페I(정신)이상이 되어 恨(한) 많은 生‘陣(생애)를 마감하시 니 一九三五年(1935년) 十二月 (12월) 初 六日 (초 육일)이라 보 고 듣는 이 마다 落淚(낙루)하지 않는 이 없었다고 전하여 오며 峰下(슬하)에는 二男(이남) -女(일녀)를 두었으니 子(자)는 信和(신화) 信奎(신규)요, 女(여)는 績城(능성) 具f建書(구건 서) 문중에 出據(출가)하였으며 j줄男(징-남) 信和(신화)는 父親(부친)의 찜1웰(원수)를 갚고져 悲;1士(비장)한 覺범(각오)로 排日 (배 일)運動(운동)을 하다가 日警(일경)에 運補(체포)되어 年(일년)여 에 ?하苦(옥고)를 치루었으나 마침 내 恐쩔(원수)를 갚지 못하고 後孫(후손)들애게 펴言(유언)만 남기 고 下世(하세)하였고 次男(차님-) 信奎(신규)는 先親(선친)의 忠勳(충훈)을 顯혈(현칭-)하고자 京쟁13(경 향)各地(각지) 緣故地(연고지)를 探닮(탐방)하여 同志(동지) 後짧 (후예)들을 만나 量要(중요)資料(자료)등을 魔集(수집)하였으나 當局(당국)의 靈b章(훈장)追 셨(추서)를 보지 못하고 別世(별세)하였는데 그후 앉父(숙부)의 펴志(유지)를 이 어 받아 公 (공)의 四孫(사손) 錫俊(석준)의 지극한 孝心에 힘입어 千辛萬苦 十六 (16)여년에 걸쳐 京 ~I‘各地의 도움으로 장하게도 -九九六年(1996년) 八月 (8월)에 大韓民國政府(대한민국 정부) 로부터 建國勳章(건국훈장)獨立章(독립장)을 追鉉(추서)받기에 이르렀다 이에 公(공)의 不 屆(불굴)의 救國(구국)理念(이념)과 뿜및(청사)에 빛나는 功勳(공훈)을 天地(천지)古今(고금) 에 傳(전)하고자 石찌(석물)을 精刻(정각)하여 이와 같이 새기면서 공이 남기신 나라사랑의 救園l精神(구국정신)은 사상으로 한 허리가 갈라진 이 讀土(강토) 이 곳 南尾젤(남미대)에 해와 달이 되시어 후세들의 산 敎育場으로 춤史에 영원히 빛날 것 이다 (우측면) 信和長孫 錫雨 曾孫 仁求 法求 守求 鍾求 (신화 장손 석우 증손 인구 법구 수구 종구) 錫英 務求 憲求 股求 (석영 무구 헌구 은구) 錫漢 學求 T求 (석한 학구 정구) 錫俊 勝-求 奉求 (서「 τZr 승구 봉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