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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 가평의 얼과 인맥 三. 昌寧 曺民 1. 납골묘비 〔전면〕 昌寧휩 . .El:ï住郞上讀-單 ;iJ~達公波 뿔暴堂j훌fl야→ /\.孫 弼秘公 後홉 三會里門中 〔후면〕 젊光(취광) 아름다운 未也山(화야산) 맑고 푸른 北漢江(북한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山緊 水明(산자수명)한 勝地(승지) 이 곳 三會里(삼회리)에 터전을 가진 昌寧(창녕)曺民(조씨) ­ 門(일문)은 派祖(파조)이신 麗朝(여조)末葉(말엽)의 홉L政(난정)을 |로正(광정)하고 ,빡朝(선 조)初入(초입)의 不꿇二君(불사이 군)의 信;융;(신념)과 j忠節(충절)로 一實(일관)한 住郞(좌랑) 上護軍(상호군) 承達(승달)公의 八世孫(8세손)인 ~i械公(펼빈공)의 子孫(자손)들이 形成(형 성)된 一村(일촌)으로써 祖先(조선)傳來(전래)의 二컴(이군)不事(불사)와 不(불)합(부)科路 (과로)의 週넓iI(유훈)을 이 어 받아 隆德(음덕 )不位(불사)하며 不敬(불사)聞達(문달)하고 폐1農 (신농)의 遺業(유업)을 즐기면서 뚫祖(숭조)理念(이념)과 忠孝(충효)思想(사상)을 굳건히 守 끓~(수호)해 온 松拍之操(송백지조)를 자랑하는 않、義(충의)에 빛나는 門關(문벌)의 後짧(후 예)로서 先朝(선조)의 享祝(향사)와 先山(선산)의 폼·藏(수장)은 子孫(자손)들이 員正(진정) 한 孝心(효심)의 結品(결정)으로 오늘날까지 維持(유지)保存(보존)되어 왔으나 時代的(시대 적) 變選(변천)의 따라 오랜 종투훌文化(장묘문화)가 先進(선진)納骨(납골)文化(문화)로 轉換 꽤(전환기)에 이르고 國家的(국가적) 拖策(시책)에 발맞추어 門中(문중)決議(결의)로 꽤械公 (필빈공)幕(묘)를 비롯하여 짧孫(예손)의 훌쪼(묘영)을 火範(화장)지내 쉰갚縣(유해)精靈(정령) 을 石찮(석분)에 安置(안치) 靈堂(영당)에 各(각)系꺼1](계별)로 奉安(봉안)하고 새로운 쩨祖 (경조)1뽑親(목친)의 文化(문화)와 倫理(윤리)道德、(도덕)精神(정신)을 培養(배양)하고 l司根(동 근)萬葉(만엽)의 子子孫孫(자자손손)이 志、氣(지기)相合(상합)하여 效率的(효율적)으로 祖上 (조상)님들의 偉業(위업)을 繼承(계승)發展(발전)하고 뿔祖(숭조) 寫孫(위손)事業(사업)을 l혐 發(계발)1혐導(계도)해 나가면 H 月(일월)과 함께 永|止(영세)照光(조광)하리라. 〔측면〕 西紀 二00五年 ζ西 홉四月 日 똥짧孫 jJn平獅校 典敎 圭해 敬識 턱寧혐.El:ï 弼秘公 後홉 三會Æ門디그 誌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