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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 • 가평의 얼과 인맥 이나 고생하시니 밤마다 목욕재개하고 뜰아래 엎드려 분향하고 하늘에 빌기를 게을리하지 않 으니 겨울 추운 날에 눈이 오다가도 기도할 때면 잠깐 멈추니 이는 하늘이 아시는 효자로 세 번째의 드문 일이고, 그의 배위(配位) 문화 유씨는 법도 있는 집안에서 지-라나서 시부모 섬기 기를 섬심성의껏 하였다. 어느 날 기도를 끝내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말하기를, 제가 들으니 포천(抱川)땅에 유명한 의원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며 약을 구하여 옴이 좋겠다고 하니 그 즉시로 어머님께 고(告)하고 길을 떠났는데 때는 밤중이라 어둡고 추워서 길을 분별할 수 가 없어 고생하던 중 별안간 난데없이 군복벙거지에디- 손에는 등불을 들고 나와서 엎드려 말 하기를 내가 길을 인도하겠다고 자원을 하고 나서기에 그를 따라 질풍같이 쫓아가니 날이 미 처 새기 전에 포천 땅 의원집에 당도히-여 약을 지어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가 날이 한나 절밖에 되지 않았다. 백여 리 길을 이 렇게 쉽게 다녀와서 약을 달여 올리니 그 약효가 좋아 병환이 나으셨다. 이는 하늘이 도우시고 귀신도 도우신 일이니 고금에 드문 일이다 이것이 네 번째 일이며, 그 후 10년 만에 아버님이 돌아가시니 시체를 붙들고 통콕하다가 기절하셨 다. 산소 옆에 묘막을 짓고 술과 고기를 일절 금하시고 3년 동안을 지정으로 모시니 이것이 다섯 번째의 드문 일이고 어머님 병환에 핑 고기를 잡수시겠다고 하셔서 백방으로 구하여 보 았으나 구할 길이 없던 중 어느 날 빔-에 닭장 속에서 핑이 우는 소리가 났다고 집사람이 말 하기에 날 밝기를 기다렸다가 닭장을 들여다보니 장끼 한 마리가 「꺼끄덕」 하며 소리를 내 기에 이 핑을 잡아 봉친하고 또 그 이튿날은 대낮에 핑 한 마리가 날아와서 뜰 아래 엎드리 나 또 이 핑을 잡아 봉친을 하였다. 실로 하늘과 귀신이 그 효심에 감동한 일로서 이웃사람들 이 다 목격한 일이다 이 것이 세상에 여섯 번째의 드문 일이다. 어머님께서 항싱 이르시는 말 씀이 자손들에게 의(義)로운 말씀만 해주셔서 형제들이 우애롭게 지내셨다. 아우가 일찍 죽고 그 후사(尼祝)가 없으므로 넷째아우의 아들로 그 후사를 잇게 하였으며 형제들이 한 이불속에 서 자고 빔이면 글을 읽으니 이것이 일곱 번째의 드문 일이다. 어머님께서 86세에 돌아가시니 그 슬퍼하심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거상(居喪)에 있어서도 대상(大喪)을 치를 때까지 한결같이 애도의 마음을 가지고 치르니 이것이 여닮 번째 일이요, 장지(裵地)를 구함에 있어 일가사람 산에 적당한 지리가 있어 쓸까하였더니 그 일가 사람이 거절하므로 7주야를 애원을 하니 산 주가 그 효성에 감동하여 허락을 하여 주어서 장사를 지내고 아우와 더불어 매일 묘정(關廷) 을 청소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마다 성묘를 했다 이것이 아홉 번째 가는 드문 일이다 어느 날 지손들을 몰아놓고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항상 생업을 게을리 하지 말고 효도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고 화목한 가정을 가져야 한다고 이르시고 향수로 목욕하시고 새 옷을 갈아 입으시더니 그날 밤 조용히 돌아가셨다. 이것이 열 번째의 드문 일이다. 아! 탁이(卓異)한 효 행이 어느 때엔들 없으리요마는 이러한 효지-는 만고에 드문 일이라 하겠다 공께서는 1864년 고종(高宗) 1년 갑자(甲子) 8월 30일에 돌아가시니 수71세이시고 강원도 춘성군 님면 박암리 계좌(쫓坐)에 장사지내고 배위(配f立)문화유씨(文化柳民)는 1793년 정조(표祖)17년 계축(쫓표) 생이시고 1잃5년 헌종(憲宗) 1년을 미(2:,未)10월 24일에 졸하셨다. 묘는 가평군 님-면 산유리 구터 계좌(쫓坐)시고 또 한 배위(配位)해주최씨(海州崔民)는 1817년 순조(純祖) 17년 정축(T 표)생이시며 10월 22일에 졸하시니 건위(乾位)합장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