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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編 각 문중 비 문 모음 • 2이 데 어 느 날 매 형(妹兄)이 오셨는데 어머님께서 핑 한 마리를 잡아 매 형 밥반찬을 하여 주 라고 하셔서 핑 한 마리를 매 형 밥반찬을 하여 드렸다. 그날 저녁 어머님 밥상에 반찬이 없음을 걱정하고 핑 대신 닭을 잡아 드리려고 닭장을 들여다보니 뜻밖에 핑(장끼)한마리가 감 틈에 끼어 있어 이것으로 어머님 밥반친-으로 올리니 이것은 효도가 하고 정성스러워 하늘이 감동한 연유가 아니겠는가 그 후 어머님 병환이 위중하시어 하나님께 축수하고 바 는 손가락을 잘라 관혈(灌血)하였더니 소생하시어 12년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이떼 공의 나이 80세시다 80노인이 3년 상을 극진히 치르는 이는 원근각지에서 장공뿐이라고 칭송이 대단하였다 공께서 4남을 두셨는데 장님-은 세 형(世亨)이 고 차남은 세주(世周) 심-남 은 세후(世尼) 4남은 세화(世華)시다. 이분들의 자손들이 백여 명에 이른다.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너그럽게 대하시고 부모님을 지성으로 효도하고 동네 어른들에게도 지극히 공 경하였다. 일생동안을 이와같이 하시니 출천(出天)의 효기- 아니띤 닭 대신 핑 이 날아와서 어머님을 공양하였겠는기 이 소문이 1741년 영조(英조) 17년 신유년에 암행어사 임상원(林 찢遠) 귀에 들어가 나라에서 가선대부동지 중추부사(흙善大夫|可知 中樞府事)란 관직을 내 리시고 그 후 1863년 철종(哲宗)14년 계해(쫓갖)에 효자정문이 히-사되었다. 공께서 1742녀 영조 18년 6월 5일 98세의 세상을 뜨시니 가평군 남면 비 령 대 거문동에 안장하였다 정문 을 세운 직후 핑 이 날아와서 정문 위에 앉아 세 번을 울고 날아갔다. 이는 그 효심에 하 늘이 감동한 때문이 아니 겠는가 1942년 임오(王午) 四. 戶費參判 公 弼훔쳤 1. 비문 §曾 戶홈參判公弼輪陣文62) 公證 9며후j~ 系{土}於仁|可 始祖혐 金用 在高麗三펄太I초II~ñI꿇l바l많術上~I정굶平章펄 1*1始괴끄 함- 파 |효 Q曾資憲大夫兵뱉判뿔行禮펠參議 十一반祖也 }>>G均館進土 光|찢參奉 꿇 斗河 五t렌파 曾피H 띔 應澤 i따l譯 5~一 ~I함 흙善大j(戶훨參判 父뚫t 得宗 次Vj tß 公仁j웹T:t:西層一六~I七껴::;L꺼 =+-티生 年햄七歲 펀/ J、學稍長文筆 當世점E쥐之材- 公띈;口 人之所훨者亦孝行 人皆챔公口 딴幾道冠f땀士 設立젠、짧 좋률敎Æï進及子弟 敎듬每不V옮 德行4ιl聲 盡於쟁6亮公w!,夜팔↓힘 入孝IU~~ 不附f共앓 以盡誠孝 썽安親心 可熾於굶면、誠之流LI1 뿔不麻然행 公파祖Z다i쩍歷一 七二五年 )L n 二十 1=1쭈 l層흙善大夫戶햄參判 훌福長浦B<;座 配貞夫人廳典|웹~甲午生 문、王子十二)J 七 11 62) {二同張.E.'ë옮務公派語 소卷 18-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