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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編 각 문중 비 문 모음 • 187 니, 그 가솔을 극진히 돌봐주고 외가에까지도 제전(聚田)을 두어서 제사를 끊이지 않도록 하 였다. 재종제(再從弟: 육촌 아우) 두 사람을 친형제처럼 대하고, 촌수가 먼 친척도 빠짐없이 돌봐주었고 자기의 거처는 소박하게 하면서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였다. 늙어가면서 산천을 즐기어 자기의 공을 밝히지 않고 집안일을 성대히 하지 않고 항상 자기를 반성하니 세상 사 람들이 감복(感服)하였다. 선비(先批:어머니) 정부인 풍산 홍씨, 부사를 지낸, 석모(錫誤)라는 분의 딸이요 이조판서 문목공(文種公), 이름은 희준(靈俊)의 손녀이고, 이조판서 청주(淸州) 한공(韓公), 이름은 용탁(用繹)의 외손이라, 13세에 부군의 집으로 들어왔고 친정 부모는 7순 (句)까지 해로하시니 한 마음으로 집안의 화합하고 게으르지 아니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1년을 먼저 출생하셨고 출생일은 8월 17일, 또 아버지보다 l년 후 에 작고, 작고하신 날은 2월 17일이다 장지는 부군 묘에 합묘하였다. 출생은 2남 1녀이고, 장남의 이름은 정로(政쩔) 성균관 진사로, 반남(播南) 박씨(朴民) 홍 양(弘陽)의 딸과 혼인하고, 차남은 무로(않훌), 자는 금정(今正), 승지(承冒) 동래(東藥)정씨 (鄭民) 헌조(憲朝)의 딸과 혼인하였다. 딸은 창녕(昌寧)조씨(曺民) 경숭(慶承)에게 출가하였 다. 지금 현감 무로(않쩔)는 3녀를 두었는데, 장녀는 반남(播南) 박풍서(朴豊績)에게 출가하 고, 2녀는 동래(東茶) 정씨(鄭民) 인억(寅憶)에게 출가, 다음은 아직 어리고, 출생이 2남인데 아직 어리다. 큰 딸(조경승의 부인)이 3남 1녀를 두었으니, 병정(秉-植) , 병주(秉柱), 다음은 아직 어리다. 아 슬프다 부군의 덕의와 선행을 다 기록하지 못하니 소자가 어찌 다 하리요. 망령되게 기록하는 것도 부군의 평소의 뜻에 어긋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생전에 계벌(系關)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후일을 기다린다. 계계 불초 아들 무로(많훌) 삼가 눈물로 기록함 현 임금(당정: 當수) 21년 갑신(甲申) 팔월(八月) 일( 日)입(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