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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編 각 문중 비 문 모음 • 163 2. 비문 해석문 조선국 증 가선대부 이조참판 통훈대부 황주목사 전의이공 영 배묘비명 정부인 영일 정 씨 합묘 삼한에 으뜸가는 6성 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씨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 을 정벌하기 위하여 금강에 이 르러 홍수로 더 나아갈 수 없게 되자 묘책을 올려 도강에 성공하자 태조 왕건이 고마워서 성씨를 물어보고 이름을 도(掉)라고 지 어주어 개국공신으 로 대대로 고관대작에 오르게 되었고 조선조에 이르러서 효정(孝靖)공 정간(貞幹), 평강공 (平簡公) 예장(禮長)이 명턱으로 국사(國師)에 오르고 청강(淸江)선생 제신(濟멀)이 문징-과 절행(節行)이 특이 (特異)하였고 그의 증손 목롱(種陸)명신(名닮) 우의정 효정(孝貞)공 행원 (行遠)이 중흥(rj1興)현신(賢ê)으로 명망 높은 재상인 데 이 분이 바로 영 배(永倍)공의 고조 부이시고 증조의 이름은 만최(萬最) 사옹원(司響院) 봉사(奉事) 조부의 이름은 정해(徵海) 상주목사 아버 지의 이름은 덕인(德|憐) 금산군수, 어머 니 는 경주 김씨 경은부원군 효간(츄 폐)공 주신(柱l표)의 딸이 다. 아버 지 군수공이 자식 이 없어 조카인 영 배(永倍)공을 입양하였 다 생가의 조부는 나주목사로 이름은 징즙(徵樹)이요 생가의 부친은 경기전(뿔基歐) 참봉 (參꿇)으로 이름은 덕봉(德、鳳) 생모는 반남(播南)박씨 참찬(參贊) 태항(泰펀)의 딸이 시다 공의 이름은 영배(永倍) 지-는 구지(久之)시 고 영종 경술년 12월 21일생으로 총명준수 비범 한 정-로(長老)의 기량이 라 계유(쫓핍)년에는 은혜를 입어 장녕전(릎寧歐) 침-봉이 되었는데, 이 때에는 어머니 김 숙인만이 생존하시니 영조께서 동기간처럼 위로하여 주시었다. 갑술 년에 동부봉사로 승진하였는데 이 떼애 액 예(械錄)의 직책을 가진 사람이 공의 빠른 출세 를 시기하여 세력을 믿고 송사를 일으키 니 공이 이를 국법으로 곤장을 쳐서 다스리니 부 내기- 숙연하였다. 을해(61:<:)년에 용감(ffJ쁨)으로 제수되고 다음 해에 직장으로 승진 이어 서 정 (T)침-봉(參추)이 되어, 기묘사화 같은 것을 우려하기도 하였다. 인현왕후를 종묘에 모시는데 감시관도 하고 승진하여 빙고()j(Jfll)별제(서Ij提) 옮겨서 장악(掌樂)주부(注術t) , 의금 (꿇禁)의빈(f義좁)도사(헤1)뿔) 임오년에 제천현감으로 니-가 3넌 만에 읍민이 편안함을 칭송히 였다 을유년에 다시 용김-(fFJ짧)주부(까쉰t) , 종묘(宗댐)서령(팽令), 병술 년에 안성군수를 여 임 수년에 덕 이 이웃 고을까지 미 쳤는데 그 때에 군내의 신귀 (新월)라는 사람이 교만하고 자랑이 심하여 공이 이를 호노(豪때)와 같이 대하니 신귀(新많) 가 부하를 시 켜서 용서늘 1::11 어 공이 방벡의 권한으로 다스렸다. 경인(냈파) 년에 정원별제(掌짧別提) 디-시 현릉령(폐 |俊令), 신묘(그pgP) 년에 특진히여 황주(黃州)목사(收셋)로 부임하였다. 황주가 양쪽 고을의 중간에 있고 수부(배j써)의 관할 하에 있으니 지방도 넓고 중요한 일도 많았으니- 일을 여 유롭게 처리하고 송사를 간편하게 하고 군적을 바로 잡고 관사와 창고를 개선하고 불필요 한 제도를 바로 잡으니 주민이 편안하였다. 그 때에 가뭄이 심하여 기우제를 지내게 되었 는데 공이 하필 종기의 질환이 심히-여 활동을 못하게 되어서 고을의 관리들이 주인을 교 체할 것을 정원하니 공이 말하기를 민의가 따가우니 어찌 민의를 따르지 않으리오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