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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編 서원 · 제단 기념관 • 145 5. 묘비건립 경과보고서 1976년 4월 25일 우연 홍익표 선생이 타계히신 후 평소 선생과 뜻을 같이하딘 친지 그리JJ.. 선생을 따르던 많은 후학들이 생전에 선생이 남기신 많은 위업을 길이 새기기 위하여 묘비건 립을 추진하기로 뜻을 모으고 장례위원장을 맡으셨던 정일권 국회의장 집행위원장 이철승 선 생 그리고 빅영록 송원용 양해준 천명기 김용채 의원 등이 국회의장실에서 p]- 모임을 갖고 의견을 교환 묘비 건립 추진에 합의를 보았으며 1976년 5월 10일 우연 선생 댁에서 신민당 최 고위원이신 이철승 선생을 위시하여 빅영록 천명기 이용희 김창환 의원 조연하 오홍석 박종콜 김승목 최승제 등이 모임을 갖고 묘비건립을 추진 위원회를 발기히-였으며 그 범위를 삼부요로 와 정계, 학계, 재계 및 각 사회단체를 망라해서 굉범위한 인사로 구성키로 하고 각 부서를 썼 으며 최규하 국무총리를 위시하여 23명의 고문과 묘비건립추진위원장에 정일권 국회의장 집행 위원장에 이철승 선생, 총무위원장에 박영록 의원, 재정위원장에 김용태 의원, 섭외위원장에 이 영근 의원, 치산위원장에 이진용 의원, 실무책임지-에 조연하 천명기 김용채 의원을 선임하고, 최영근 선생을 위시한 18명의 재정위원과 51명의 위원을 선임했습니다. 그리고 광회문에 소재 한 우일빌딩 404호실을 연락사무실로 정하고 본격적인 추진사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_ 1976년 8월초에 그 취지를 서띤으로 각 위원에 게 발송하여 이 외에도 많은 호응을 받아 순조롭게 추 진하였으며 동년 8월 16일에 모란공원 석공업사와 석물을 계약 동년 말까지 석물을 완료키로 하였습니다. 1976년 11월 중순경에 비석을 묘소 이-래 우연 선생께서 생전에 잘 쉬시던 잣나무 동산에 옮겨놓고 청임- 윤길중 선생께서 비-쁘신 중에도 수치에 걸쳐 내려오셔서 손수 짓고 쓰 신 글을 직접 비석에 부치시는 등 2개월여에 걸쳐 조각과정을 일일이 지켜보셨습니다. 노고~ 아끼지 않으셨던 것입니 다. 1977년 2월 중순경에는 모든 석물을 도로에서 묘소까지 옮기는 작 엠을 시직히웠숨니다 그러나 묘소가 워낙 높은 관계로 운반에 애로가 많았으며 또한 치신직엽 에도 보시는 비와 같이 토피가 전혀 없고 암반이 심해 성토의 어려운 작업과 당초계획에 없터 계단석 및 갓석을 추가하는 등 이에 따른 소요경비가 예싱보다 훨씬 초과되었습니다 그간 성토 성축 등 많은 작업을 총망라해서 묘비건립까지 총인원 약 1,400명이 투입되었 으며 작업기간이 9개월여에 걸쳐 오늘에 이 묘비를 제막하게 되었습니 다. 그간 개인적인 친분의 정을 후의를 베풀어 주신 분, 그 밖에 협조를 아끼지 않으신 많은 인사에게 감사의 밀-씀을 거듭 올리며 미진하나마 이 것으로 경과보고를 대신합니 다. 1977년 4월 25일 우연 홍익표 선생 묘비 건립추진위원회 三. 고 千淵 洪寶杓 선생 기념사업회 설립 취지문 “신문에서 주징하는 기능을 펼치는 장은 논단이고 그것의 대표를 λ댐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사 설이 없는 신문은 사림으로 말하변 얼굴이 없는 생이며 문패가 없는 집 대문처립 허전하기만 하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