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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編 서원 제단 · 기념관 • 135 3. 폰주사상(尊周思想) 조선은 본래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하였고 또한 천연적으로 계절이 정확한 살기 좋은 풍 토로서 인류가 생기면서부터 중국과는 일정한 국경이 없이 서로 왕래하여 현재 한국에 거 주하는 성씨 약 250개 중에 3분의 2 이상인 170여개 성씨가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족보 기타 문헌애 기록되어 있어서 옛날 선조의 고국으로 흠모해 왔고 이 렇게 사람이 왕래하면 서 한(핏)민족의 글자(文字)인 한문(漢文)과 각종 종교, 제도, 기술(책력, 의, 약, 농, 공 기 술)등을 배워 오면서 선생의 나라로 존중했으며 공자의 유교가 고구려 고구려 소수림왕(/ J、 센林王)2년(372년)에 전래된 이 래 공자의 춘추(春秋)대의(大義)(존주정신)(존중화<尊마l훨>, 양이적<熾렷秋>)을 인류의 제1 큰 의리로 숭봉하여 오다가 고려 충렬왕(忍烈王) 시대 (1300년경) 회헌(~앉11젠) 안향(1(11괴)선생 이 주자(朱子)의 새 유학(성리학)을 수입하면서부터 존회-(尊CI줍) 양이(熾횟)하는 정신이 더욱 철저하여지면서 배원(排元), 척불(투佛)로 혁명정신 이 일어나서 조선국을 개국한 후에는 숭명을 국책으로 유교를 국교로 하니 (1392년) 국민상 하가 다 숭명을 체질화하여 200년간 태평성대를 누려 외국침략을 모르고 지내다가 임진왜 란(1592년)이 일어나 적국토를 일본에 강점당하였다가 명나라의 구원으로 다시 평정된 후 에는 재생시켜준 구국의 나라(펴造灌웹)로 더욱 고맙게 알고 정묘(T:9îJ), 병자(內子) 호라 (胡亂)에도 다시 구원을 한 사실 이 밝혀진 후에는 더욱 감사하여 명나라 멸망(1없4년)에도 온 국민이 숭명(뿔明) 배청(排淸) 항일(熾헛)을 공자가 존주(尊周)한 것과 같은 정신으로 믿고 숭명(뽕明)사상을 존주(尊周)사상이라 하였고, 숭명(뿔明)은 공자의 존주(尊周)사상으 로 여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