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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編 서원 제단 · 기념 관 • 119 第三章 大輔챔홉(대보단) (하면 대보리 소재 : 경기도 기념물 제28호) - . 조종암 대통행묘의 유래 바야흐로 300년 전인 조선왕조 숙종 10년(1684년)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그욱히 시뱃물 이 동쪽으로 흐르는 경기도 가평군 하면 대보리 위에 솟은 암벽에 멸청복명(滅淸復|꺼)의 결의를 다지기 위하여 청음(H펌陰) 김상헌(金尙憲)선생이 심양옥중에서 구하여 온 명나리­ 의종(敎宗)황제(皇帝)의 어필 「사무사(}ßl無:5fß)J 를 모본(模本)하고 또 효종대왕이 영의정 이경여(李敬與)공에게 내린 「일모도원(티 흉途遠), 지통재심(至痛在心)J 을 써서 당시 가평 군수 이재두(李爾柱)공에게 부탁하여 보내니 이 군수가 허격(許格) 백해명(슨I海明) 등 여러 사림과 힘을 합하여 이를 선조 어필인 「만절필동(萬折必東) -^B조번방(再造灌훗1)) J 과 이 전(좋)한 「조종암(朝宗熾)J 을 함께 전각(鎬刻)하고 의종(數b宗)황제가 순사(狗死)한 날인 3 월 19일에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종(神宗)황제에게 해마다 제전을 받들던 때로부터 비 롯하였으니 비원(秘짧)의 대보단과 화양동(華|楊洞)의 만동묘(萬束햄)와 아울러 이른바 삼향 (三享)의 성 지 (뿔地)가 되 었다 이어 백해명(白海l꺼)공이 우임- 선생에게 대통행묘를 세우고자 문의하던 바, 의종(殺宗)황 제까지 병향(井享)토록 하였으나 마침내 건묘(建碼)는 실현하지 못하고 숙종(햄宗) 30년에 이르러 사론(土論)에 의하여 의종(敎宗)황제를 병사(井祝)하여 왔다 순조 31년 신묘년(1831 년)에 9의사 후손이 옮겨와 수호하면서 대보단(太報펌)과 만동묘(萬束網)에서 신종(마11宗)과 의종(敎宗) 두 황제 제향을 이미 거행하므로 명나라 태조 고황제(高皇帝)만을 제향하면서 제일도 명태조 개국일인 매년 정월 4일로 바꾸고 또한 정월 6일에는 9의사에게도 제사하 기 시 작하였다 이래로 경향유림 에 의하여 길이 유지 수호하여 오던 중 왜정하의 탄압으로 갑술년(甲않 샤)(1934년)부터는 중지하게 되었다. 천운이 돌아와 만청(滿淸)은 신해혁명 (1911년)으로 이미 멸망하고, 백세의 은덕을 잊을 수 없어 8 . 15 광복을 맞이한 대한민국 초 무술(찌않)년(1058년) 정월 4일에 가평관민과 9 의사 후손의 주창으로 다시 무너진 제단을 모으고 향회-를 피워 삼황제 제향을 이으며 중 원의 평정을 아뢰니 밝게 훈호(첼홉)처창(樓협)하였고 아울러 9의사 제사를 행하여 영령A 편안케 하니 해마다 제향일에는 원근에서 많은 유림지사가 참례하였다. 미국초 을묘년(1975년)에는 경기도 지방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었으며, 그 2년 뒤 전국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