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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 가평의 얼과 인맥 명령으로(因朝令), 서원이 철폐된(微院) 후(後) , 근(近)백년(百年)에 서원의 토지(院土)와 대 토(쩔土)가 각각 개인의 소유로 돌아가고(各歸꽤人所有) , 홀로 유명무실한 이름만이 있을 뿐 이니라(獨存虛名而E,), 이에 이르러(至於) 최승렬(崔31-烈)씨는 본 가평 (加 tfS) 북면(北面) 이 콕(젤찬)에 대대로 살아오면서(世居以來) , 윗 대로부터 학벌이 고명하고(임 h代學關高名), 성 현을 사모하는 정성(暴聖之誠)이, 보통 사람과 달라서(凡人所不) , 서원의 복원사업을 듣자(聞 百院復元之廢), 흔연히 무상으로 토지를 내놓았다(欣然無價出), 즉 청평리(淸/fS별) 서원촌 (품院村) 147번지 17호의 1 , 157평(百 五十七바 L!1)이 이 것이다. 우리의 유림의 도리를 생각 하컨대(堆我쁨林之道), 감사할 바를 모르는지라(感해無知), 후학들(後之떤子)은 이 취지를 오 래도록 전하는 것을(永傳此읍)를 천만 다행한 것으로 알지어다(千萬幸홉 Ö1). 추이(追而): 서원(書院)을 복원(復元)하여 건축하는 일(建葉팎)은 불가능(不可能)으로 부득 이 (-1~1-흉E,) 추모(追暴)비 (꽤! )를 건립(建立)하고 후기를 기대한다고 말하나(以待後째코) , 그러 나(然而), 현(現) 짐-곡(濟션)서 원(書院)복원(復元)추진(推進)위 원회 (委쉴會)와 가평 (加平) 유지 (섣志)지사(志土)의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햄|랫之훤也) 스스로 일컬어대( 白謂딩) 비록 세 상이 오랑캐의 풍습(世跳胡風)이라고 하나, 원기가 변치 않고(元氣不變)하고 성현을 사모하 r 지극한 마음이(暴聖之誠心)이 변치 않으니(不變) , 주자께서 말씀 하시기를 디-행이 사림의 천성 이란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다(幸짧秉錄파天I펀I쩡)라고 하시니 참으로 성인의 밝은 가르 침 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員可謂聖人之明訓 Ö1) 이에 유림 동지들과 더불어(乃與짜林同 志), 복원을 타개하고자 하는 뜻(打開復元之意)은 무엇보다도 대의가 아니 겠는가(행大義載) !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짧 口歸-), 비 록 빈조(頻深: 제사를 잘 받드는 부녀의 덕)의 정성 스런 뜻만은 못해도(跳無頻練之義) 보잘 것 없으나마(당E博쫓配) 묘도에 술을 부우며(尊敵­ Z웹) , 진실로 추념의 도를 펼친다면(꾀↑'-I~追擾之道), 즉, 보잘 것 없는 제물과 제주일지라 도, 정성을 다하여 잔을 올리는 예로 추모의 도리를 다한다면, 어찌 구색을 갖추었다고 아 니하겠는가. (물광不可載), 여러 사람들이 이 렇게 하는 것 이 착하다고 말하지 않겠는가(聚 右是름也善했), 그렇게 말하리라(是言 也), 후일을 위하여 비석을 세워 이를 표함으로써 (今後立石以表) 삼가 자그마한 정성을 펼치노리-. (겼빼微誠). 이 뜻을 받들어 비석에 새 긴다(繼之以銘口) 초정 (樞‘π) 李 康 五 지 음(橫) {JlUTI되 建立推進委員 宋 泰 첼 金 체ê 林 正 洙 尹 學 炳 崔 ;淑 喆 - 金 道 植 洪 淳 피룹 尹 f슈7 개=[ 宗親 金 '7느c 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