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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와 초기 유계예배당을 친히 건축하여 구영성업에 전심진력하시며 영수로 시무하시던 중 기미년 3.1독립운동에 직면 평소 애국애족정신이 투철한 장로님은 직각 거사에 참가키로 결심하고 여러 동지등을 규합하여 만반태세를 갖추고 청하지역에 선두적 역할로 주도면밀하게 계획추진하여 기미년3월 12일 청하시장을 기하여 오용천씨댁에서 지사들과 숙의 거행 태극기를 높히 흔들며 보무당당 의기양야하게 독립만세를 외치며 덕천리 미남리를 경유하여 청하시장을 일주하니 면민도 합세 함성은 천지를 진동 행진중 청하주재소앞에 도달하자 무장한 일본경찰이 제지 억울하게 일본관헌에 체포당하여 대구형무소로 송치 투옥되어 1년여에 옥고를 치루었으니 혹독한 고문이며 그 엄청난 고애이야 필설로 어찌다 표하리요 출옥후에도 삼엄한 일본경찰에 감시를 피하며 백척불굴 암암리에 독립운동을 지속하였으며 만주까지 망명활동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하여 유계교회를 거점으로 후진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 함양시킨 살신성인 멸사보국하신 숭고한 애국표정의 발로인지라 이 땅에 태어난 후세만인의 귀감이라 아니이르랴. 1936년 11월 경동노회 창립시 유계교회 장로 장립을 받고 희생적 봉사헌신 진력한 독특신조는 성도들에게 모범됨이 지대하였고 1945년 8.15광복은 되었으나 민족적 혼란이 극심함에 사회정화에 화신이 되어 동분서주하시다가 1954년 6월 12일 향년 64세로 소천하시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