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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계리 마을 유래 서정천의 발원지인 궁곡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을 따라 덕성산과 호학산 줄기가 형성한 큰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 명종 원년 을사사화때 황해감사로 있던 윤상문이 이 마을에 유배되어 하천계곡 서쪽마을 즉 서계리라 불렀으며, 하천에 돌이 쌓여 물이 쉽게 잦아들어 건천동,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 유계리로 개칭하였다.. 마을 북쪽 안 골짜기는 궁곡, 황배이골, 왜명동 등의 지명이 있으며, 신라시대 황방사 절터에 1943년 법성사가 건립되었다. 마을 동편 하천변에 오리에 뻗친 풍치림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총 개머리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벌채되었고, 현재 1천여 평에 50여 그루의 노거수가 남아있다. 1919년(기미년) 3월 12일 청하장터에서 나라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의거를 일으킨 주동자(청하 8인, 송라 15인) 23인중 한 사람 이상호(1890 ~ 1954) 독립의사의 생가가 있고, 마을 서편 작은 언덕위에 그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