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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서장 노마리아 경감 1946년 경찰 당국에서 여성 경찰을 모집할 때 지원 조건으로 20세 이상 35세 이하의 나이, 고등학교 졸업 수준의 학력을 요구했다. 당시 15세 이상 여성 인구 중 중학교 재학 이상 학력을 가진 여성이 2%에 불과햇던 점을 감안하면 여성 경찰의 지원 조건이 매우 까다로웠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당시의 지식인이었던 여성들이 경찰에 입문하는 배경이 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일제강점기 교육자로서 계몽.선도 활동에 헌신한 분들도 있었다. 그중 대구여자경찰서 2대 서장인 노마리아 경감(1897~1982)은 유관순 열사의 사촌 올케로 일본 경찰의 위협에도 유관순의 행적을 발설하지 않고 도피를 도왔다. 또한, 1920년에는 충남 공주에서 야학당인 '공금학원'을 운영하고, 학생들에게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매일 부르게 하며 애국사상을 고취했다. 노마리아 경감은 1946년 민족통일총본부중앙협의회에서 활동하던 중 당시 협의회 부회장이던 김구 선생에게 "명령 게통이 선 곳에서 큰일을 해 보라."라는 권유를 받아 1947년 경찰이 되었다. 그후 1949년 6월 대구여자경찰서장으로 부임하여 1953년 9월 퇴임할 때까지 여성피해자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에 힘썼으며, 6.25 전쟁 중에 계몽 연설을 하고, 여간첩을 검거하는 등의 공을 인정받아 2013년 국가유공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