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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한국전쟁 전후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1946년 미군정의 식량보급정책에 반발했던 민중봉기 운동인 10월항쟁, 1950년 국민보도연맹사건과 대구형무소 재소자 희생사건 등으로 많은 민간인들의 법적 절차없이 무고하게 희생되었다. 이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의 유족들은 1960년 4.19 직후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경북지구피학살자유족회'를 결성하고 당시 전국적으로 일어난 피학살자유족회운동의 선두에 서서 학살 관련자 엄중 처단과 학살사건의 진상규명, 경찰의 유족 감시해제 등을 요구하며 활동하였다. 경북지구피학살자유족회는 대구역 앞 등에서 합동위령제를 거행하고 대구 곳곳의 학살 장소에서 유해를 발굴하면서 은폐되었던 학살의 진상을 세상에 알리고 학살 관련자를 고발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였다. 그 결과, 1960년 제4대 국회에서는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피학살자 신고를 받고 현장조사를 하는 등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51년에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유족회 간부들이 반국가단체 결성 및 활동 혐의로 구속되고 혁명재판에 회부되어 최고 사형 등의 판결을 받으면서 유족회는 해체되고 말았다. 40여년이 지난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유족들이 또다시 국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였고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설립되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상이 일부나마 규명되었다. 위령탑 작품설명 탑의 형태는 희생자의 넋을 감싸고 위로하여 소천하기를 소망하는 모습으로 하단은 人(사람 인)의 형태로 두 팔을 벌려 둥글게 넋을 끌어안아 화합하고자 하는형상이며 상단(주탑)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형태를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