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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실 향 민 의 삶 청호동에는 출신 고향별로 같이 모여사는 마을이 생겨나기 시 작했다. 가장 먼저 신포마을이 들어섰고, 북청마을, 단천마을, 신창마을, 홍원마을, 이원마을, 영흥마을이 들어섰다. 신포, 신 창마을도 모두 북청군의 읍이라 청호동에서도 북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았다. 짜꼬치마을은 북청군 속후면 창성리 의 지명이며, 앵꼬치마을은 짜꼬치의 안쪽 마을이라는 뜻이다. 1990년대 후반 신수로가 개통되면서 단천마을과 신창마을이 사라졌다. 대신 청호동 동편 호수를 매립해 조성한 곳으로 주민 들이 이주하면서 ‘미리내마을’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난 2000 년에는 조양동 ‘새마을’이 행정동으로 청호동에 편입되었다. 새 마을은 1950년대 이후 청초호 수로확장 때 청호동 주민들이 이 주했으며, 1968년에 발생한 대형재난 68해일로 피해를 입은 청 호동 이재민들이 1969년 이주한 마을이다. 이 마을은 1999년 마 을조성 50주년 한마음잔치를 개최해 주민화합을 다지기도 했다. 청호동은 함남 출신만이 아니라 다른 이주민도 많다. 그중 북 강원 출신도 많은데, 지난 1996년 11월 청호동 인구조사에서 북강원도 출신은 대략 15~26% 정도로 파악되었다. 청호동 실향민의 고단한 삶 청호동 사람들은 항상 해난사고와 피랍 위험에 시달려야 했 다. 1962년 1월 2일에는 갑자기 몰아친 돌풍으로 속초항으로 들어오는 선박들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 청호동 어 부가족들은 방파제 끝에서 바로 앞바다에서 전복되는 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