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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실 향 민 의 삶 양을 잇는 2등도로가 남북으로 개설되어 있었다. 청호동 북쪽 으로 단절된 물길(개목)은 사람 한명 다닐 수 있는 나무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때도 지금의 갯배 구간으로 우회해서 우마차나 자동차를 싣고 건너는 도선이 운행되었다. 1930년대 속초항이 개발되고 수산업이 크게 발전하자, 이곳 청호동 모래톱이 정어리공장지대로 지정되어 공장시설이 다수 들어섰다. 그러나 월남 피난민들이 이곳에 들어올 때, 갯배 근 처에는 함석집 한 채 있고 시멘트로 만든 생선보관탱크만 들어 서 있었을 뿐이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바닷가 모래톱 이라 언제 큰 파도가 몰려와 휩쓸고 갈 지 모르고, 모래땅이라 우물을 팔 수 없어 식수 확보가 곤란했다. 물길을 건너 이동하 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실제로 1968년 큰 해일이 청호동 마 을을 넘어 상당수의 이재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청호동은 한마 디로 사람이 살기 힘든 척박한 모래땅이었다. 모래톱마을, 실향민들의 임시피난처가 되다 1951년 속초가 수복되자 6월부터 속초에 실향민들이 들어 오기 시작했다. 청호동에는 1952년부터 실향민들이 본격적으 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증언에 의하면 1951년 말에 는 청호동에 거의 집이 없었는데, 다음해인 1952년 말 청호동 에 1백호 정도 집이 들어섰다고 한다. 실향민이 정착하기 전에 청호동 일대에는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남쪽에는 비행기 활주로가 있었다. 실향민들은 청호동 북쪽인 갯배 근처에 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