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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향 민 의 애 환과 이 산 가족 상봉 이 야 기 51 을 갖고 월남했고, 아버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결국 서로 가 부자임을 확인하지 못했다. 1972년 역사적인 첫 남북적십자회담 성사로 지역 내 많은 실 향민들은 이산가족 상봉과 생사확인을 기대했다. 그러나 남북 한이 회담을 거듭하면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가족상봉의 꿈 은 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975년 11월 15일 속초 대원극 장에서는 이산가족 성묘 실현을 위한 속초시민 궐기대회가 2천 여 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기도 했다. 1977년 3월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MBC TV 프로를 통해 속 초 지선자씨는 6.25 때 헤어진 두 동생과 오빠를 극적으로 만 나는 일도 있었다. 저조한 아바이마을 이산가족 상봉 지난 1985년 역사적인 첫 남북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진 이후 2000년부터 시작된 본격 상봉으로 2018년까지 대면상봉 21 회, 화상상봉 7회가 성사됐다. 실향민이 많이 거주하는 속초지 역에서도 상봉자가 나왔으나 아바이마을 청호동의 경우 2010 년 11월 제18차 이산가족상봉에서 북한의 딸과 상봉한 김동율 씨 말고는 상봉자가 없다. 속초, 양양, 고성지역의 상봉자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체제였 던 이곳에서 북으로 피난을 가거나 인민군대로 갔던 이들이 남 쪽의 가족을 찾아 상봉하는 경우가 많다. 월남 실향민이 북에 남아있는 가족을 찾아 상봉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유독 아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