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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실 향 민 의 삶 언론에 나온 속초의 이산가족 일화 월남실향민이 많이 정착한 속초는 이산가족이 많은 곳이다.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전에도 이런저런 언론보 도가 제법 많았다. 1971년 9월 22일 남북한 적십자 간에 이산가족 상봉과 생 사확인을 위해 처음으로 자유의 집과 판문각을 잇는 남북직통 전화가 가설되었다. 남북한 직통전화의 첫 통화자로 북한적십 자 판문점 상설연락소장 최봉춘씨(당시 37세)가 우리 언론에 얼굴이 공개되었다. 그때 속초시 중앙동에서 원산한약방을 하 는 최영춘씨(당시 45세)는 TV와 신문에 나온 최봉춘이 한국 전쟁 때 함남 안변군 석왕면에 두고 나온 둘째동생이 틀림없 다고 주장했다. 최씨는 한국전쟁 중 6남 1녀 형제 중 두 형제 만 월남했다. 이러한 사연이 당시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지만 후속기사는 찾을 수 없다. 북한 적십자 최영춘은 1985년 서울 을 방문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 또 다른 이산가족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1971 년 10월 4일 휴전선을 넘어 북한군 김영남씨(당시 22세)가 귀 순했다. 속초 중앙동 38번지에 사는 김홍섭씨(당시 54세)가 이 귀순병이 자기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씨는 1.4후퇴 때 생후 6개월 된 아들을 비롯해 가족을 남겨두고 혼자 월남해, 나중에 월남한 모친과 동생을 극적으로 만나 함께 살아왔다. 김 씨는 KAL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귀순병과 상봉 대면까지 했 다. 그러나 귀순병 김영남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