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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실 향 민 의 삶 을 모른다. 그는 며칠전 시내에 살고 있는 아는 사람이 몇 년 전에 수 소문해 찾은 북의 아들을 만나러 중국에 들어간다고 인사를 왔었다 고 이야기도 했다. “나도 죽기 전에 처자식들 얼굴이라도 한번 볼 수 있을지 모르겠 다”며, 그는 끝내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엄경선 기자> 그 후 인터뷰를 했던 실향민은 중국에서 연락이 와서 다녀 왔다고 한다. 의뢰했던 장사꾼이 북한 가족 편지와 사진을 가 지고 왔다. 어떻게든 사람을 데리고 나오려고 했는데 부인은 나이가 많아서 나올 수가 없고, 딸은 남편이 인민국 출입국관 리소에서 일해서 나와 봤자 빨갱이 소리 듣는다고 못 나왔다 고 했다. 남동생 사진이랑 편지만 가져와 넘겨받았다. 이산가 족 상봉을 한다고 해서 두 번 신청을 했는데 모두 안 됐다. 그 는 2015년 무렵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부인과 딸을 보지 못 하고 생을 달리했다. 이야기 4. 아바이마을에서는 처음 이산가족 상봉한 김동율씨 실향민이 많이 거주하는 아바이마을에서 그동안 수차례 진행 된 이산가족 상봉에서 가족을 만난 상봉자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 2010년 11월 제 18차 이산가족상봉에서 아바이마을에서 도 첫 상봉자가 나왔다. 금강산 이산가족상봉장에서 북에 두고 왔던 딸을 만난 김동율씨 사연이 2010년 11월 15일자 설악신 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