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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실 향 민 의 삶 같이 모여서 청춘가나 국악을 부르는 게 다였는데. 명절이 돌아오면 북청사자놀이라는 걸 했지. 북청사자놀이는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농 한기 때 하는 놀이라 우리네 고기를 잡는 사람들은 그나마 북청사자 놀이에 참여할래야 할 시간도 없었어. 난 스물한 살에 결혼을 했어. 그땐 열여섯 살이 되면 시집 장가를 갔단 말이야. 혹간에 상투를 튼 사람도 있었지만, 주로 하이칼라 머 리를 했지. 난 아이가 둘이었는데, 큰 아이가 8살 초등학교 1학년 댕 기는 거 보고 난 혼자 피난 나왔지. 지금은 어찌됐는지 몰라. 죽었는 지 살았는지.... 가족 모두 데리구 나올라면 데리고 나올 수도 있었지. 이렇게 오래 있을 줄 알았으면 아무래도 데리고 나왔지. 난 며칠만 피난 나와 있 으면 되겠다 싶어 아군들 따라 남하했지. 그 이후로 이북의 가족소식 은 들을래야 들을 수도 없었어. 생각하면 속만 상하지. 생각해 볼 필 요가 있겠니? 그래서 지금도 가끔 이북에서 고기 잡으며 부르던 뱃 노래를 불러본단 말이야. 에라 쑤가리로구나. / 에라 쑤 처음에 산대는 용왕님 산대 / 에라 쑤 다음에 산대는 전주님 산대 / 에라 쑤 ― <최성희기자> 이야기 3. 가족 못 만나 한마당잔치가 더욱 슬픈 실향민 1997년 9월 17일 아바이마을 청호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3 년만에 함남도민회 한마당 잔치가 열렸다. 이날 함남도민회 사 람들은 북청, 단천, 홍원 등 출신 군 푯말을 앞세우고 모처럼 고 향 사람들과 어울려 회포를 풀었다. 그러나 이렇듯 기쁜 자리에 서도 북에 가족을 둔 실향민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 고향 사람 들 만나면서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을 더 절실히 떠올린 실향민 의 사연이 1997년 9월 22일자 설악신문에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