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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실 향 민 의 삶 시가지를 제대로 꾸미지 못하고 있었는데, 기사에서는 ‘애향심 의 결핍’을 이유로 손꼽고 있다. 주민의 대부분이 토착민이 아 니다 보니 지역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돈푼이나 벌었다는 사람은 대개가 외지사람들이라서 속초에 투자하기보다 서울에 다 투자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이들을 초등학교 적부터 서 울에 보내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으니 속초에 기름기가 돌 수 있 겠느냐고 한탄하고 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넘은 1974년 속초에서는 대대적으로 고 향심기운동이 펼쳐졌다. 1975년 7월 2일자 동아일보에는 ‘살 벌한 해변도시에 애향의 꽃, 속초의 고향심기운동’이라는 기사 가 실렸는데, 기사에서는 “고향심기운동이라는 이색적인 애향 심 북돋우기 운동이 펼쳐진 지 1년이 지나면서 삭막하기만 했 던 속초시에 점차 따뜻한 숨결이 감돌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6.25동란 중 전시가가 쑥밭이 되어 버렸던 속초시(당시는 읍)는 수 복 이후 계속 시세가 늘어 이제 7만5천의 인구를 헤아리고 있지만, 정작 본토박이는 30%에 불과하고 나머지 70%는 함경도 출신 실향 민(43%)과 기타 객지에서 흘러온 인구(27%)가 차지해 고장에 대해 별로 애착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경향이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속초 에서 기반이 잡히면 서울 등지로 이주해 가거나 그대로 눌러 산다 해도 서울에 집을 사 자녀들을 서울에서 교육시키는 풍조가 많았다. 속초시 김명한(金明漢)시장은 이같은 시민들의 사고방식을 없애고 애향심을 북돋우기 위해 작년부터 「고향심기운동」이라는 색다른 시 민운동을 폈다. 시민들이 손수 나서 고장 땅에 나무 한그루라도 심고 스스로 땀 흘려 가로를 단장함으로써 그 마음속에 고장 사랑하는 정 을 싹트게 하자는 것이었다. 살풍경했던 시가지 여기저기에는 이제 소담한 화단이 가꾸어졌고 설악산에 이르는 도로 등도 시민들이 헌수한 가로수와 화초로 곱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