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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 업 앨 범 에 비 쳐 진 실 향 민 도 시 속 초 35 이의 가족은 모두 일에 매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이북에서 내려 온 월남 실향민들은 남한의 다른 지역보다 높은 향학열을 보여 줬다고 한다. 이같은 향학열에 대해 실향민 출신 극작가 고 이 반은 2012년 설악신문에 발표한 자전소설 “날아라 곱새기야”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수복지구 조그만 고장의 조그만 학교인 속고는 나라 안에서 눈여 겨 볼만한 사건을 만들어 낸 적이 없었다. 특징이 있다면 피난민들 이 많이 다니는 학교라는 정도였다. 1회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예상외 로 많은 학생들이 대학으로 진학했다. 이북 사람들의 향학열 덕이려 니 했다. (중략) 고려대학교는 다섯 개 단과대학이 있었는데, 단과대 학들은 각기 한명의 수석졸업생을 배출하게 되어 있었다. 그해 고려 대학교 다섯 개 단과대학 수석졸업생 중, 세 명이 속초고등학교 1회 졸업생들이었다. 한국일보 사회면에 톱으로 기사가 실려 속초는 잔 치분위기에 휩싸였다. 서창하 교장과 윤홍렬 교사가 고려대학교 졸 업식에 참석했다. 위 글에서 언급한 해당 졸업식은 1959년 2월로 추정된다. 한 편 높은 향학열에도 불구하고 궁핍한 삶으로 많은 학생들은 학 비를 마련하고자 방학 기간은 물론이고 학기 중에도 배를 타기 도 했다. 속초고 3회 졸업생 김동식씨는 당시 수업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내가 지금도 고등학교 수업료는 안 잊어먹어요. 한달 교납금이 1,850원이야. 매월 제 날짜에 불입을 잘 해야 기말 시험을 치지. 학 교에서 교납금을 안내면 시험 칠 자격을 안줘. 당시는 동해안에 고기 가 많이 날 때야. 오징어가 참 많이 났지. 수업료 안낸 학생들 손들라 고 해. 수업료를 안 내면 월말고사를 볼 수 없어. 그러니까 지금 동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