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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향 민 정 착 초 창 기 의 속 초 29 한 가장 큰 참사였다. 당시 함남 홍원 출신으로 어린 학생이었 던 극작가 고 이반(본명 이명수)은 다음날 아침 학교 가는 길에 직접 참사현장을 목격하였다. 미그기에서 폭탄이 떨어진 곳은 속초시내 금호동 천도교 자리였다. 수십 채의 판잣집들이 무너 지고 사상자의 시신이 공터에 쌓였고, 판자촌이 폭탄을 맞아 산 산이 부서진 모습은 처참하고 암담했다. 학교에 갔더니 폭탄 때 문에 죽거나 부상당한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이 미그기 피폭 참사를 계기로 속초의 실향민 단체 중에 가 장 먼저 단천군민회가 만들어졌다.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노무 자와 가족 13명이 참사를 당했는데, 이들 중 5명이 단천 출신 실향민이었다. 함남 단천군민회에 따르면 허문호, 이선복, 동 형석, 이방근, 이동순 등 5명이 미군 군수 하역 상호회사에 근 무하던 중에 1953년 3월 31일 적공군기의 야습으로 사망했다. 사망 날짜는 미군 문서기록과 차이가 난다. 이들은 단신으로 월 남해 시신을 수습할 연고자가 없었다. 같은 고향사람인 단천군 민들이 나서서 시신을 수습해 영랑호변에 안장하고 장례를 치 렀다. 이를 계기로 속초에서는 실향민단체로는 가장 먼저 단천 군민회가 결성되었다. 5인의 묘역이 있던 영랑호변은 이후 단 천군민 망향동산으로 조성되었다가 1990년 영랑호 개발에 떠 밀려 고성군 토성면으로 이전했다. 1954년 큰 수해로 실향민들 상처입어 1954년 11월 수복지구 행정권 이양을 앞두고 속초를 비롯한 양양군 수복지구는 최악의 수해를 만났다. 1954년 9월 12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