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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향 민 의 삶 20 자리 잡았다. 영랑동 일대는 미군 70수송대대 본부가 들어섰 고, 동명동의 속초기차 역사는 미육군수송부대(ATC)가 본부와 클럽으로 사용했다. 아바이마을 남쪽 중앙 관통도로와 학사평 에도 미군 비행기 활주로가 들어섰고, 양양 강현에는 군비행장 이 들어섰다. 청호동 아이파크 아파트 일대에는 1군단 사령부 가, 조양동 부월리 마을 앞에는 미군사고문단 KMAG와 1군단 민사처, 한국군 야전공병단이 들어섰다. 후방 침투작전을 수행 하는 HID 동해사령부와 다른 첩보부대 등도 인근에 주둔해 있 었다. 속초항 주변 언덕에는 대공포부대가 들어섰고 수시로 굉 음을 울리며 포를 쏘는 연습을 했다. 한국전쟁 중 속초는 그야 말로 거대한 군사기지였다. 속초의 미 10군단은 속초 해안에 4곳의 부두를 만들어 미군 군수물자를 하역하고 운송했으며, 그 일을 ‘상호운수주식회사’ 가 담당했다. 이 회사에는 평균 500~600명의 노무자가 고용 되었으며, 이들 노무자의 70~80%는 월남인이었다고 한다. 부 산에서 노무자 공개모집에 응해 일자리를 찾아서 속초로 들어 와 정착한 실향민도 있다. 이 민간노무단과는 달리 1953년 1월 최전방으로 군수품을 실어 나르는 ‘지게부대’, 제100노무여단 이 속초에서 창설되어 휴전 때까지 활동했다. 당시 속초시는 후방 지원지역이었지만 그리 안전한 지역은 아 니었다. 1953년 4월 21일과 22일 밤 속초항과 군수부대, 인근 민간인 거주지역이 수차례 적의 공격을 받아, 한국군과 13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16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하기 도 했다.